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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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에서(Elevation)

 

그들 위로 하늘 높이 어딘가에서

스콧 캐리가 계속해서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별들에게 향한 채,

지표면의 필사적인 손아귀를 벗어나

솟아오르고 있었다.

p.202

 

스콧 캐리. 아내와 이혼하고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42세 중년 남성. 195센티미터 몸무게 109킬로그램의 운동 안하고 허리띠 위로 뱃살 툭 튀어나온 거구로 땀 삐질삐질 흘리는 눈길도 안가던 이웃집 아저씨.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스콧의 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일.

 

처음부터 그의 몸매를 들먹거리는 이유는 알수 없는 체중감소 불치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총량에변함은 없다. 오로지 몸무게만 0.5킬로그램씩 하루하루 줄어든다.

하루 인생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스콧의 무게감은 책 전체를 읽는 내내 철학하게 만든다. 스콧에게 생겨난 병은 중력의 지배를 거스르는 초현상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싸움은 스콧의 내면에서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결국 스콧이 치르고 있는 이 싸움은 모두가 옳다, 그르다 거수처럼 손들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인 것. 우리 모두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안으로 잡아끄는 마음이다. 스콧은 무게를 내려놓기로 마음 먹는 순간 행복을 본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는 채울 수없을 만큼 비좁던 꾸역꾸역 무게들이 행복을 찾아 소멸된다.

 

 

숭고함에서 우스꽝스러움으로 변하네그려.

p.29

스콧의 이웃에 레즈비언 커플 디어드리와 미시가 있다.

시골마을은 겉으론 평화롭고 아름답고 완벽한 숭고함이다. 하지만 속으론 중력을 거스르는 우스꽝스러움 천지다. 스콧의 변화를 대변하는 말처럼 나를 변하게 만드는 말이다. 항상 처음은 쉽지 않다. 결국 사랑의 본질은 질량이 같은 것을 사람들은 드러낸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이유로 디어드리와 미시를 동네에서 인정하지 못한다. 스콧은 이들의 아픔을 공감한다. 멀쩡한척 해야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저항하는 두려운 싸움은 끝이 없다. 행복하고 싶은 본질은 모두 같은데......

 

"그러니까.....레즈비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결혼까지 한 레즈비언이지. 그건 절대 타협 안 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캐슬 카운티가 어떤 동네인 줄 알면서 그래. 여기서 산 지 얼마야, 25년 아닌가?"

"30년 넘었지."

"거봐, 게다가 확고한 공화당 지지자잖아. 보수적인 공화당원. 이 카운티도 2016년에 3 대 1의 비율로 트럼프 편을 들어 줬고 사람들은 우리 돌대가리 주지사가 물 위로 걷는 신이라도 되는 줄 알지. 그 여자들이 정체를 숨기고 살았으면 괜찮았을 거야. 그런데 안 그랬잖아. 사람들이 이젠 둘이서 성명서라도 내려고 한다고 생각하거든. 난 두 사람이 동네의 정치 풍토에 대해서 무지했던 게 아니라면 순전히 멍청했던 거라고 생각해."

p.65~66

나의 행복과 타인의 이익을 위한 균형을 지구의 중력에서 찾아야 하는 우리의 뼈아픈 현실......당기는 힘을 벗어나면 우리는 살 수 없다. 이 낡고 오래된 관습적 시선 속에서 변화를 일구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스콧은 메시아처럼 우리에게 나타나 행복을 위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기적을 이루어 낸다. 행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때로는 비이성적이고, 초현상적이고, 나와는 전혀 다르게 행복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 행복을 맞다, 아니다로 가를 수 없고, 버리라, 마라 강요할 수 없다. 스콧이 전에 없던 행복을 느끼므로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스콧이 가벼워진 몸으로 결단한 일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

 

스콧은 그의 삶에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만 '행복'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스콧은 자신이 가진 체력의 극치를 경험했다. 신세계였다.

그는 만사가 다 이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이 고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라면 우리는 죽음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p.136

마라톤 대회는 성공적이었고, 스콧의 도움으로 디어드리는 우승을 거머쥔다. 마을에서 마라톤 우승자가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지역 신문 1면을 장식한 세 사람의 사진은 지역사람들 화합의 상징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행복을 다독여 주는 변화에 장으로 나아가게 된다.

 

스콧의 무게는 0.

스콧은 자신의 짐을 감당하고 받아들인다. 살아서 자신의 의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다. 중력을 거스르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스콧의 기분은 어떤걸까. 무거운 추를 매단 채 억지로 고도를 오름이 아니라 제로인 상태로 고도를 오른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나를 초월하고 너를 초월하여 우리가 초월하는 세상을 만들기.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p.97

진지한 메시지를 판타지 섞인 설정에서 간결하고 깔끔하게 전해 주는 기법이 너무 좋았다. 계속 철학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의미를 찾는 일을 내 안에서 기분 좋게 할 수 밖에 없는 서사구조를 이 책은 가지고 있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라는 유연한 사고를 연륜 쌓인 대가의 손끝에서 만나는 일은 정말 가치가 있다.

 

스콧을 응원하는 디어드리의 혼잣말이 나를 향해 울린다.

한동안 중력을 거스르고자 하는 노력은 내 안에서도 일어날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제로로 만들어야 할 나의 묵은 무게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서, 스콧(인혜야, 어서~). 어서.

이제 거의 결승선이야.

이건 당신이 이겨야 할 경기야.

당신이 끊어야 할 테이프라고.

그러니 망치면 안 돼.

사람 숨 막히게 하지 말고, 어서.

덩치 큰 양반아.

솜씨 좀 보여 주시죠.

p.201 디어드리 생각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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