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
정다연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

 

 

- 정다연 작가 에세이 / 원앤원북스_인문·문학 브랜드 '믹스커피'

"서른이되면 다 잘될 줄 알았어."

- 스물과 서른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사랑과 책임은 별개다.

사랑에 수반되는 책임은 사람의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내가 소중했다.

애프터 레인 p.38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

정다연 지음

기자로서, 작가로서

이십 대 때, 우울증·실직·실연·프리랜서

삼십 대 때, 펜을 들고 글을 씀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라는 제목에 매료되어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문장과 문장 사이를 흘러 다녔다. 흘러 다니는 내내 좋은 냄새가 난다.

처음엔 민트향처럼 산뜻한 향내가 나는 듯 스며들더니 약간씩 빨래방에서 혼자 돌아가는 기계 속에 던져 넣은 아쿠아 향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나는 것 같더니

에스프레소의 진한 향내도 나고, 마른안주에 한잔 걸치는 알코올 냄새도 난다.

나에겐 다 좋은 냄새다. 그때그때 힐링이 되는 향들.

 

어떤 냄새는 기억을 가둔다.

뜨거웠던 시절은 기억할 수 있어도

뜨거웠던 순간의 감정은 냄새처럼 날아갈 터였다.

서러워졌다.

헤어진다는 것은 단지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 아니다.

그 나이의 나, 사랑을 느꼈던 감정, 함께 걸었던 모든 길,

그리고 이십 대 그 시절 자체와의 영원한 헤어짐이다.

어떤 냄새 p.45

 

 

아련한 기억들은 무미건조해져서 지금은 더 이상 가슴 뛰지 않는다.

정말 미안한데, 그 시절은 그때뿐이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왜 나이 듦은 내 마음 들여다보는 일을 어색하게 만드는 것일까.

추억은 그리움을 주고 기다림을 주는데 사람을 주지는 않나 보다.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한때 행복했던 그 시간들은 미련이 없고,

초 미세 먼지처럼 주의하라고 발령 주의보를 내려버린다.

사랑은 그렇게 기억의 편린 속에 삐딱하게 남아 있지만,

작가는 그 삐딱하게 눌린 자국들을 실수로 쏟아버린 물들로 씻어버린다.

일도 사랑도 어설프기만 한 진행 속도에 사람과 섞이는 관계들에 상처받고

말들에 상처받고 타이밍에 상처받는다.

이런저런 모양새로 치이는 마음들.

필자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속앓이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조차도 믿을 수 없다.

내가 만들고 싶은 얼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대한 이야기만

귀담아들었던 것 같다.

여전히 비와 같을까 p.151 

 

 

 

 기자.

 

 

기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행착오도 겪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야 한다.

고민을 멈추는 순간, 기자의 생명도 끝난다.

그래서 기자는 다른 의미로 고민하는 직업이다.

매 순간 타인에게든, 자신에게든 질문을 해야 한다.

스스로 확신해서도 안 되고 재차 묻고 답해야 한다.

울프에게 묻다 p.199

 

어떤 일이든지 어렵다. 고민이다.

요새 내가 하고 있는 교민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잘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두 갈래의 인생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두가 성공하거나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분명 좋하하는 일도 경쟁을 해야 하고 그 안에서 비교될 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 또 상대방에게 의존할 것이다.

타인들에게 묻고 내가 좋아하는 만큼 잘 한 게 맞는지 확인되면 그 말에 좋아하겠지.

차라리 잘 하는 일을 하는 게 맞는가 싶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들을 느끼는 대로 덤덤하게 보여주면서도

치열한 고민과 실패가 쌉싸름한 초콜릿 맛이다.

그렇게 인생을 살자하니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다.

살아오면서 죄짓고, 살아가면서 돈 쓰고, 사는 동안 사랑하고 이별하고 배신한다.

나로부터, 너로부터, 우리로부터...... 모두가......

작가가 터득한 인간 관계 방법이 있다.

첫째, 나를 잃지 않는다.

둘째, 무리하지 않는다.

셋째, 애쓰지 않는다.

넷째, 평소대로 한다.

관계, 오롯이 p.213

 

               

 

 

 

 

'서른이 이렇게 왔구나.'

걸레질을 하면서 서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서른은 실수처럼 왔다.

아직 삼십 대가 될 준비는 되지 않았는데,

어른답지 못한 구석이 여전히 많은 것 같은데

나는 실수로 물을 쏟은 것처럼 갑자기 삼십 대가 되었다.

어쩌다 서른 p.296

 

 

확실히 정다연 작가의 책에선 좋은 냄새가 난다.

아팠지만 잊지 않을 만큼씩만 궂은 날 통증이 있고,

사랑했지만 불안한 이십 대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안아줘서 고마운,

힘들었지만 알맞게 여문 첫 수확의 알밤 나무처럼......

어느 정도 향이 깃들어 있는 향낭 주머니 같다.

<미안해, 실수로 널 쏟았어>를 읽으며 지난날들을 회상해보는 살뜰한 시간이 좋았다. 보고 싶은 얼굴이 생겼고, 미안하다 말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의 그 남자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일상이 나 같은가... 물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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