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의 후손
박숙자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멜의 후손

 

2009년 《철원의 하루》로 "뉴욕문학"에 등단.

2011년 《건너야 할 강》으로 미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소설집 《두물머리》와 영문소설집 《River Junction》를 출간한

저자 박숙자의 첫 장편소설!

 

  #하멜의후손

  #지식과감성

  #박숙자장편소설

 

 

 

 

 하멜의 후손

 

다음 날인 9월 5일, 새벽에 마람이 멎었다.

노예 같은 생활을 벗어난 그 해방감 뒤엔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하멜은 뱃머리에 서서 인생의 노른자 위

같은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보낸 조선 땅이 땅거미 지는 서편으로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망연히 서 있었다.

떠난다는 말은 입 밖에 낸 적이 없었건만 해심은 이미 가슴과

피브로 느끼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자식도 결국 자기 자신이

먼저라는 것을.......

 

 

하멜 (1630년생)과 해심(1626년생)

증조부 남민석(1905년생)과 선이(1915년생)

남진수(1980년생)와 재인(Jane Foster-1980년생)

 

 

 

 

17세기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한 역사적 인물 하멜을 중심으로 허구적인 인물들을 소개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발자취를 그려낸 소설이다.

 

1부는 하멜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제주도에 표착해 무속인 아내 해심을 만나 자식을 낳지만,

하멜은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탈출을 시도하며

척박한 땅에서 야만인처럼 대접받던 험난하고 고단한 시간을 견딜 수 없어한다.

2부는 증조부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진수를 통해 서사된다.

3부는 진수의 이야기로 이방인의 피를 받은 그의 개인사를 덤덤하게 풀어낸다.

그 어느쪽도 소속될 수 없을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고뇌하고 방황하는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653년 8월 16일,

악몽과 같던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토록 견고하고 아름답던 스페르베르호가 암초에 몇 번 부딪혔다고 해서

그렇게 어이없이 부서지다니!

선원 64명이 이 배를 믿고 넓디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아끼며 사랑하지 않았던가?

한정된 공간에서 같이 먹고 생활하며 서로 의지하는 가운데

다투기도 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던 동료들이

파도에 떠밀려 해변에 시체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하멜은 기가 막혔다.

p.54

 

하멜의 조선 땅 생활은 비참했다.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먼 이역 땅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더욱 암담하고 돌아가야 한다라는 일념 하나로 버티게 될 뿐인 것이다.

 

주님,

이 세상에서 불러 가신 파울루스를 받아들이시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고향에 계신 그의 부모님도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p.76

 

 

 

소설 속 시대별 인물들은 모두 허구로 ‘하멜’의 후손이다.

 

"나의 할아버지 남건열은 1936년에 출생하여 일제 때 유년기를 보냈고,

해방과 나라의 분단 그리고 끔찍한 6.25 전쟁 등,

변화무쌍한 시대를 다 거치신 분이야.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다복한 인생을 사셨지. 물 건너 삼신리 선이의 딸과

결혼하여 오동리에서 조용히 살았어. 그분의 부친 남민석,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가 일본에서 가져온 돈으로 마련한 논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군색하나마 단란하게 삼 남매를 길렀지."

p.207

 

세대를 걸쳐 나라의 흥망성쇠를 쥐락펴락했던 한 많은 역사 사건들,

이 모든 이별, 아픔과 상처, 그리고 사랑을 시대의 가족사와 함께 들여다 본다.

 

 

진수가 재인을 여수 엑스포 주제관으로 안내한다.

 

"이제 듀공을 만나러 가자.

아주 똑똑하여 말도 할 줄 안대."

"듀공이 뭔데?"

"돌고래와 같이 생겼어. 바다 소(sea cow)라고도 하는 짐승이야.

물속에 살긴 하지만, 물고기가 아니라 동물이지. 소처럼 풀을 먹어.

바다풀 말이야. 듀공은 아주 순한 동물이야.

고기 맛은 소고기와 비슷하다고 해. 듀공은 주로 필리핀, 호주 등

주로 더운 지방의 연안에서 살아. 사람들이 마구 잡아먹고

또 오염이 심해서 지금은 멸종 상태야. 그 많던 듀공이 이젠

세계에서 100여마리만 남았대.

우리가 이제 듀공 한 놈을 만나게 된다."

p.311

 

 

바다라는 곳을 통해 주고 받는 우리의 이야기.

 

 

 

* 헨드릭 하멜

1653년(효종 4) 7월 하멜은 상선 스페르웨르(Sperwer) 호를 타고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게 되었는데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당시 제주목사 이원진은 하멜 일행을 체포하여 감금하였고 당시 네덜란드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박연 (네덜란드 이름 얀 얀스 벨테브레)이 한양에서 내려와 통역을 하였고 하멜 일행의 소속과 정체가 파악되었다. 하멜 일행은 제주도에서 탈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고 10개월 동안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한양으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았다. 하멜은 조선의 임금인 효종을 알현하였는데 이때 일본으로 송환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되었으며 자신이 포를 다루는 포수의 경험 때문에 신무기 개발을 지원하는 훈련도감에 배속되었다. 당시 조선은 북벌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문물과 지식이 무기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청나라의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자 하멜은 이들을 찾아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탈출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가 이런 사실이 발각되어 처형될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1656년 3월 한양 훈련도감에서 이들을 담당하기가 힘겨워지자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전라병영성에 소속되었다. 이곳에서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잡역에 종사하였다. 당시 흉년으로 생활은 궁핍하여 먹을거리를 구걸을 하기도 하였다. 1660년에 전라병영에 부임한 절도사 구문치는 하멜 일행에게 비교적 관대하여 이들에게 집과 텃밭을 제공하였다. 그들은 7년 동안 전라병영성 근처 초가집에 머물렀다. 1663년(현종 4) 흉년이 들자 하멜의 일행은 남원에 5명, 순천에 5명,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12명이 분산되어 배치되었다. 하멜은 여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었고 고된 노역과 생활고에 지쳐 탈출을 결심하였다. 1666년(현종 7) 마침내 7명의 동료와 함께 배를 타고 탈출하여 일본 히라도(平戶)로 건너가서 나가사키(長崎)로 탈출하였다.

 

나가사키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商館)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 바쿠후에도 전해져 조선에 남아있는 네덜란드 선원들의 석방교섭이 진행되었다. 1667년 석방 교섭이 완료되어 조선에 남아있던 동료도 모두 석방되었고 1668년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헨드릭 하멜 [Hendrik Hamel] (두산백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