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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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영국 청년 마이클의

마이클, 제임스 그리고 아버지...

오래된 사진과 일기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야기

잊힌 전쟁을 살아낸 이들에게 보내는

진솔한 마음

 

 

 

 

6월 25일 한국전쟁

1950년 그 해, 한국은 맹렬한 추위와 썩어 문드러지는 듯한

더위로 그 참혹함과 비참함을 더했다.

한국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3대에 걸쳐 아직 해결하지 못한 우리의 몫이 있다.

한국전쟁 속에 수많은 영혼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 영혼들의 이름은 무엇이라 불러줘야 하는 걸까?

지금 부산에 잠들어 있는 그들에게 어떤 안부를 물어야 하는 걸까.

그 겨울, 영국 청년들은 의무 징집병으로 부산항에 왔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혹독한 겨울 맹추위에 손발이 동상에 얼어 절단이 나던 열여덟, 열아홉의 어린 꽃들. 전쟁은 안중에도 없고 일단 살고자 했을 어린 젊은이들이었다. 명분도 실리도 없이 징집되어 한국 땅을 밟은 그들은 왜 왔으며, 무엇을 얻고자 부산항에 들어왔을까.

 

* 의무 징집병

의무 징집병은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 세대들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분위기 속에서 영웅심리처럼 의례식을 가졌던 청년들, 전쟁이 주는 호기심과 자부심이 가져다주는 명예로움을 높이 샀던 청년들, 정규군처럼 월급을 받을 수 있어 가난 때문에 참전했던 청년들, 친구들을 따라 무리 지어 참전한 청년들, 한국은 알지도 못했던 청년들, 그래서 어느 땅으로 가는지도 모른 채 징집된 그들이었다.

 

 

 

*봄, 잊힌 전쟁

영국, 영국군 81,084명의 용사들이 참전했다.

1,106명이 전사했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1,060명이 포로가

되는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부른다.

세월이 흐르고,

2014년 런던 템스 강변에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제막되었다.

이게 이들을 기억하는 첫 서막에 불과하다.

어린 청년 용병들은 이기고 살아 돌아왔음에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왜 그럴까.

그들이 전쟁사를 알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한 국가라는 이름은 그렇게 개인을 밟고 서나 보다.

그런데 기념비를 세운 우리 대한민국의 이념과 그들을 향한 감사에 대한 의미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저는 바닥에 놓인 포피(양귀비꽃) 화환에 붙어 있는

“잊지 않겠다”라는 글을 읽었을 때 제일 슬펐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잊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는다는 말이

사람들은 다 잊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기념비 아래 스탠드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영국군 장병들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그 먼 곳에서 일어난 남의 전쟁에 왜 갔을까?’

‘수호’라는 것은 지킨다는 뜻인데,

무엇을 지키려면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1950년 대한민국에, 수호할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었을까?

"그때는 북한에서도 해방된 조국의 자유나 민주개혁을 부르짖었는데,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북한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물론 지금을 기준으로 하면 두 사회는 비교할 수없이 다르지만, 전쟁이 일어난 1950년으로 돌아가면 두 사회는 많은 것이 닮았고, 어떤 것은 겹쳐 있었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기념비는

“영국군 장병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라는 문구를 가져야 그들을 위한 정직한 기도가 될 것 같다.

 

 

 

*여름, 데이비드 마이클 호크리지 소위

1950년 이스트본칼리지 학생회장, 고전 문학반 멤버, 학교 럭비팀 대표 선수.

1950년 12월 졸업 후 1951년 입대.

군 복무 후 1953년 10월 옥스퍼드 대학 입학 예정

1952년 2월 6일 한국에서 전사.

마이클은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마이클 호크리지는 놀랍도록 용감했고, 자신의 허물에 눈 감지 않았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정직했다.

그는 고통에 이상할 정도로 무감했고, 좀처럼 두려움을 몰랐다.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괴로워했다.

충성을 다하고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는 늘 당당하게 죽는 것을 연습해 온 것 같다”

영국은 가을이 되면 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기억하는 양귀비꽃이 온 거리에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가슴에 빨간 양귀비꽃 ‘포피’를 단다. 그걸 보면 100년도 더 전에 일어난 전쟁이 아주 가까운 과거처럼 느껴진다.

마이클의 기록을 보면, 이념이나 가치 사명 때문에 전쟁에 참전했던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을 시험하고 모험하며 증명해 보이려는 사적인 결정으로 한국에 왔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들을 국가의 기념비적 의미에서 기억하는 게 잊힌 전사자들에게 보이는 적절한 예의인가 하는 질문에 도달한다.

      

“어떤 이를,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모습으로 기억해주는 것이 더 존중하는 방법 아닐까요?”

“개인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전쟁터에 나간 젊은이들이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겠네요. 각자 자신의 고민을 가졌던,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던 젊은이요,”

 

- 마이클 기억하기

 

 

 

 

 

*가을, 아버지와 일기

“일기는 시대를 담아두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한 개인의 일상이지만 거기에는 그 시대도 같이 적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기는 다음 세대 사람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잊힌 전쟁에서 시작한 필자의 기억하기는 전쟁 일기와 아버지의 자서전을 통해 아버지들을 이해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그들의 힘들었던 삶의 이야기를 숙연하게 전한다. 열다섯 살이었던 소년은 함경남도가 고향으로 어머니와 막냇동생을 두고 피란 길에 올랐다가, 여든 살 노인이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통일이 되면 나의 동생 또는 그 자식을 무리 없는 범위 내에서 찾아달라”

라는 유언을 남긴다.

현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념전쟁이 한창이다.

역사는 진화하고 시간은 흐른다.

진화라는 것은 꼭 우월하거나 앞선다는 의미라기 보다

우리가 우리의 안식과 번영을 위해 좋은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게 맞겠다.

한국은 아직 전쟁 중이고, 진화 중이다. 매일같이 이념 갈등을 빚고 상대 진영에 대해 날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아직 전쟁세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 세대를 지나가고 있는 중임을 알고 전제한다면 좋겠다.

 

 

 

 

*겨울, 슈톨퍼슈타인

영국, 11월 11일은 1차 세계대전 종전 추모일이다.

11월엔 ‘포피’라는 양귀비꽃을 어디서나 볼 수 있어서 이 꽃으로 이날을 기억한다.

왜 하필 1차 세계대전일까.

정규군으로 시작했지만, 긴 전쟁 폐허 속에 징병제가 실시되어 모든 젊은이가 전쟁터로 나가야 했던 전쟁,

국가 간 동맹 때문에 명분 없이 치러지는 전쟁, 1차 세계대전이 잔인한 비극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 영국인들은 무엇을 추모하는 것일까.

필자는 궁금해한다.

전사자의 충성, 애국심, 희생, 용맹, 헌신, 아니면 얼과 넋 같은 의의일까.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지요?”

“그저 ‘그들’을 기억합니다.”

 

 

* 슈톨퍼슈타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라는 뜻의 동판

독일 예술가 군터 뎀니히가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1992년 독일에 처음 설치했는데,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어 1,200여 개 도시에 7만 개가 넘는 슈퍼톨스타인이 있다고 한다.

“이웃사람에게 일어난 이 불행한 일에 행인들의 발걸음과 마음이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동판 위에는 “여기 살았다”라고 적습니다.”

나와는 거리가 먼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였던 일이 나의 이웃이 겪는 중인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관계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평화 디딤돌’이라는 프로젝트로 일제시대 징용 노동자의 이름을 새겨 넣어 동판 위에 “여기 살았다” 대신 ‘이 동네 사람’이라 새겨 넣었다.

“옛 거리가 남아 있는 곳에서 그런 표지를 본다면 마음이 더 짠해질 텐데요.

우리의 삶의 공간은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기억을 담아둘 장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나의 이념과 무관하게,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표지를 기꺼이 가슴에 달 날이 올까요?그렇게 되려면 우리의 포피는 어떤 색깔,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전쟁 세대와 휴전 세대 사이를 지나가는 우리들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고리다.

모든 지나가는 시간과 개인사가 모두의 역사가 되어 공존한다.

포용하며 기억하여 진화해야 한다.

포장하지 말고 왜곡하지 말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모두의 목소리를 항해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다.

“갈등의 해결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다만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로부터 시작해보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서로 반목하는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이야기의 다른 부분입니다.

그들은 함께 상처 입었기 때문에 결국 치유도 함께 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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