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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진화 ㅣ 류츠신 SF 유니버스 5
류츠신 지음, 박미진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9월
평점 :
고독한 진화
세계적 작가 류츠신
청소년을 위한 SF소설 시리즈 다섯 번째 엔딩 이야기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간의 사랑이 꼬리를 물고 지구 존재를 우주와 연결
상상력의 반전 극대화
<고독한 진화> 는 세편의 단편을 묶어 엮은 소설집이다.이로써 청소년을 위한 SF소설을 엮기 위해 자신의 작품 중
스무 편을 선점해 총 다섯 권에 나누어 담아 시리즈로 출간했다.
앞에 담긴 작품들도 작가의 사실적 과학이론을 근간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문장이 살아있어 우리에게 고도의 지적 자극과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는데 이번 <고독한 진화> 역시 만만치 않은 대 반전이었다.
‘타인의 눈’, ‘지구 대포’, ‘산골 마을 선생님’ 작품의 단편 구성배치도
단연 돋보였다.
<고독한 진화>는 지구의 내면으로 눈을 돌린다.
우주로 확장시켜 위만 쳐다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존재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내면을 파헤친다.
* 타인의 눈 *
크고 도톰한 우주복을 입은 그녀.
실제 모습보다 더 작고 왜소해 보여
가엾기까지 한 젊은 여자.
“우주는 도서관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낭만적인 세계가 아니며 한편으로는 오히려
지옥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한 모습”
남자는 그녀의 눈 한 쌍을 가지고 휴가를 떠난다.
눈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VR 안경이다.
이것을 착용하면 내가 보는 모든 이미지가
초고주파 신호로 발사된다.
그러면 멀리서 똑같은 VR 안경을
쓴 사람이 이 신호를 받아서
내가 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기막힌 발상에 너무 놀랐다.
가만히 앉아서 세계를 정복하는 오감은 짜릿하고 쾌락적일 것 같다.
증강현실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의 소통과 교감이
녹아있어야 한다는 철학적 상상력이 놀랍다.
이 소녀는 남자가 전해주는 초원과 달,
들풀과 들꽃, 구름과 바람을 모두 담는다.
그렇게 까지 하는 소녀를
남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불편해 한다.
부담스러워 한다. 남자는 말한다.
“당신은 이런 사소한 것도 아주 소중히 여기는 군요.
다른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못해요.
모든 게 쉽게 얻어지는 시대잖아요.
물질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파란 하늘과 맑은 물이 있는
아름다운 환경, 시골이나 외딴섬의 고요함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심지어 옛날 사람들이
가장 얻기 어렵다고 했던 사랑도 가상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경험해 볼 수 있게 됐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손만 뻗으면 잡히는 과일 무더기
앞에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싫증 나 던져 버리는 꼴이죠.”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소녀는 도대체 누굴까……
소녀는 편지한다.
눈만 감으면 대초원이 떠오르고
직접 이름 붙인 작은 들꽃 하나하나를 만날 수 있다고.
그럼 안녕히!
왈칵 울음이…소녀의 마지막 인사말에서 멍울이 든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뼈아픈 후회를 하며 타인의 눈을
재차 읽으며 소녀를 다시 만났다.
충격적인 반전 속에 우주복을 입고 소녀는
어디로 간 걸까……
지구 존재의 이류를 내면에서 찾고자 떠난 긴 여행……
수천 킬로미터 깊이에서 전해지는
소녀의 심장박동 소리……
이제 세상 끝 어디를 가든 소녀와
더 이상 멀어질 수는 없으리라.
* 지구 대포 *
각 대륙의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
세계는 남극대륙으로 눈을 돌린다.
지구전체의 핵무기를 철저히 폐기하는 것으로
비핵화가 실현되면서 남극대륙을 향한
인류의 경쟁은 더 안정되어 간다.
박사 선화베이, 아내 지질학자 자오원자,
여덟살 짜리 아들 선위안.
그리고 운명의 당의.
전 세계 핵 폐기 계획에는 해체와 지하 핵폭발
두 가지 방식으로 채택됐다.
선화베이는 백혈병 치료를 위해
동면에 들어가기로 결정 하고
아내와 아들에게 남은 삶을 축복한 뒤,
40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동면 시스템을 통한 인간 생명 연장권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미래에 다시 살아나는 선택을 존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윤리적으로 생각해 볼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지금은 어려운 선택일 수 있으나
미래에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이건 또 얼마나 무서운 인간의 진화일까.
선위안은 <고독한 진화>전반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인물이다.
지구가 폐허가 되어버린 이 모든 최악의 상황은
선위안과 선화베이가 원인이었다.
중국과 남극을 통하는 지구 지하 터널을 건설하고
더 나은 탈출항로인 우주로 날아가는 일들은
모두 사랑이 결핍된 인간의 헛헛함에서 초래되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현실에서는 무력한 경우가 많지.
반대로 역사의 흐름을 쥐고 있는 현실 속의 강자는
대부분 상상력이라고는 없는 빈곤한 뇌를 가지고 있고.
그런데 네 아들 선위안은 역사상 몇 안 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사람이었어.
평소 현실이라는 존재는 그에게 환상이라는 바닷속에
있는 외딴섬일 뿐이었지.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원하면
자신의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엎을 수 있었어. 환상을
작은 섬으로 그리고 현실을 바다로 삼는 거지.”
남극대륙을 향한 나라간 경쟁이 초보적인 합의에 이르고 남극대륙이
지구 전체의 공동 개발 구역으로 확정된다. 강대국들은 더 넓은 경제구역을
얻고자 그곳을 번성시키고 자원을 개발하고자 한다. 결과는 참혹하게도 더
악화되어가는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
현재는 치열한 삶 속에서 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써 나가지만,
미래는 삶의 애환은 없고 결과물만 숭고하게 기억한다.
“만리장성과 피라미드 역시 완전히 실패한 프로젝트였죠.
전자는 북방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아 내지 못했고,
후자도 그 속에 있는 파라오의 미라를 부활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 위에 서린 인류의 정신만이 영원히 빛을 발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게 됐죠!”
선화베이와 아들 위안의 기형적 인류애도 깊게 생각해볼 만하지만,
앞 작품 ‘타인의 눈’속 소녀와 얽혀있는 또 다른 반전 매력이 숨어있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듯 하다.
* 산골 마을 선생님 *
앞 두 작품은 지구 내면화를 통해 지구인의 존재를 드러냈다면
마지막 작품은 우주 외계로 확장된 영역을 보여준다.
“산간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존재는 빈곤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곳 사람들이 현재의
빈곤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이었다.”
산골 마을 선생님은 생각한다.
교육이 없다면 사람이 천박해지고
열악한 자연환경은 사람을 좌절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정말 이 산골에 가망이 없다고 느낀 것은
이곳 사람들의 생기 없는 눈빛 때문이었다.
지구 밖, 은학의 중심에서 2만년의 우주 전쟁이 막을 내린다.
은하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 무시무시한 우주전쟁이자 탄소 문명과
규소 문명 사이의 처절한 생존경쟁이었고, 탄소 연방과 규소 제국의
오랜 전쟁 중 일정 수준의 문명이 있는 행성계는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탄소 연방은 생명이 존재하는 곳에선 ‘문명 테스트’를 진행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마지막 수업으로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을
가르치게 되고, 우연한 필연적 서사로 파괴당할 뻔한 지구에서
생명을 가진 존재, 산골 마을 아이들이 발견되어 운명적 테스트를 시작한다.
산골 마을 아이들에게 달린 지구의 운명.
아이들은 무사히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고독한 진화
구식 문명이지만 독자적으로 발전한 지구의 문명.
탄소 연방은 지구 주위 100광년 범위에
비행 금지령을 내린다.
‘고독한 진화’는 유희하는 상상 속에 실현 가능한 과학적 사건,
문화인류의 철학과 사상이 한데 어울려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엮었다.
진실과 허구 속에서 미래를 찾아나가는 묘미가 요소요소에 적재해 있다.
저자 : 류츠신
세계적인 SF 작가. 2015년 장편소설 『삼체』로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을 수상했으며, 등단 이래로 중국 SF 문학상인 ‘은하상’을 아홉 차례, ‘성운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류츠신은 1963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산시성에서 성장했다. 1988년 화베이수리수력원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발전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는 깊은 산속이라 일찍 해가 지는 근무지에서 기숙사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풍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엔지니어 특유의 구체적이고 섬세한 묘사 덕분에 “과학 기술과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그는 현대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근미래 사회를 묘사함으로써 SF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으며 교사, 대학생, 이주 노동자, 엔지니어 등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연스럽게 독자의 공감을 끌어낸다.
우주의 신비 못지않게 우리 주변에 있는 노동자·약자·소수자의 세계도 신비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역시 컴퓨터 엔지니어인 아내와 함께 발전소에서 근무하며, 매일 밤 SF를 쓰고 있다.
1999년 단편 「고래의 노래」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을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이들만 살아남은 지구를 그린 『초신성 시대』, 시골 교사가 아무도 모르게 지구 멸망을 막아 내는 「향촌 교사」, 가난한 창문 닦이가 별안간 우주 공간으로 떨어지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중국 태양」 등이 있다. 2019년 초 개봉한 SF 블록버스터 <유랑지구>는 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중국 대입 시험에 그의 소설이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다.
역자 : 박미진
동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톈진사범대학에서 수학했다. 중국어 강의와 무역 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한국관광공사 소속 중국어 전문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하며 유커들에게 한국을 널리 알리고 있다.
국내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중국 원서의 출판 기획 및 번역 작업 역시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안녕, 우울』 『서른, 노자를 배워야 할 시간』 『마윈의 충고』 『큰소리치지 않고 아들 키우는 100가지 포인트』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