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여왕
#미래그림책152
#루타 브리드 글,그림
#김서정 옮김
갈매기 여왕님이 라트비아에서 날아왔어요.
갈매기 여왕님 레나타는 기억을 잃어버렸어요.
갈매기 여왕님…
어쩐 일로 아파트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 일까요.
라트비아는 해안가가 절경인 발트해 3국 중 한 나라입니다.
라트비아 그림책을 미래아이 출판사에서 152번째로 출간했어요.
예쁜 나라만큼이나 그림책도 예쁘고 단아한 선을 따라서
밝은 색채감으로 몇몇의 특징만 살려 표현했어요.
“옛날 그 옛날,
낡은 집도 새 집도 아닌 집에,
늙지도 젊지도 않은 레나타라는 여자가 살았습니다.
레나타는 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파트 사방에서 견딜 수 없는 소리들이 쏟아지고 있었거든요.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지를 않나,
이웃들이 음악을 크게 틀어 놓지를 않나……
하지만 그중에서도 레나타가 가장 싫어한 건,
갈매기들과 그 찢어지는 울음소리였습니다.”
라트비아 사람들도 우리들처럼 아파트 소음이 문제인가 봅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어쩜 이리 똑같은지…
우리 삶의 이야기가 지구 반대편 저쪽 모르는 나라에서도
들려오고 있다는 게 아주 신기합니다.
게다가 해안가 항구도시라 그런지 갈매기 울음소리가 등장하고 있어요.
그림에서는 갈매기가 입에 파란색 생선을 물고 언제나 레나타 주변에서 맴돌고 있어요.
레나타는 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힘들다고 말하는 레나타의 표정과 행동에서 극에 달한 스트레스와 독기가
바싹 올라 마구마구 퍼부어대는 절절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레나타의 아파트 생활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울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바로 그때,
완전히 새로운 소음이 등장했습니다.
아코디언 연주자가 2층으로 이사를 온
거예요.
레나타의 삶은 완전히 끔찍해졌습니다.
남자가 날마다 발코니로 나와 앉아 노리를
불러댔으니까요. 게다가 그건
죄다
갈매기에 대한 노래였답니다!”
가뜩이나 갈매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끔찍한데
아랫층에서 아코디언으로 갈매기 노래를 부르다니요.
레나타는 리듬에 화음까지 곁들여진 갈매기 소리가
진저리 나도록 싫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레나타는 왜 그렇게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싫을까요?
책
제목은 갈매기 여왕인데…갈매기를 지극히 싫어하다니요……
“나는 매일 고문을 받는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지요?”
하지만, 레나타는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왜 그렇게 갈매기를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처럼요.
“그런데 진실은 저 멀리 바다 건너,
해가 절대로 지지 않는 바위섬에 있었답니다.
그곳은 갈매기 왕국이었고, 레나타는 사실 갈매기
여왕이었지요.
여왕은 높은 옥좌에 앉아 신하들 소리를 들었습니다.
갈매기들은 날마다 여왕에게 싱싱한 생선을 바쳤습니다.
바닷물은 얼마든지 양껏 마실 수 있었고요.”
“레나타의 삶에는 뭔가 빠져 있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가끔은 갈매기처럼
비명 지르듯 울고 싶었어요.
레나타는 남몰래 사랑을 찾으면서
옥좌 뒷면에 갈매기 왕을 그렸습니다.”
이제서야 왜 갈매기들이 레나타 주변에 모여들어
울어댔는지 알 것 같아요.
레나타는 갈매기 왕국의 여왕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겁니다.
모든 기억을 망각하고 도시 한복판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던 거예요.
레나타는 외롭고 힘든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같이 말을 하고, 눈을 마주치며,
바라만 봐도 좋을……
사랑을 노래하고 연주하며, 멋진 그림 같은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외로운 바위섬에서 레나타가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네요.
그런데 기억을 못하다니……
“어느 날,
외로워 더 이상 견디기 힘들게 되었을 때,
레나타는 바위틈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물 주전자였는데,
희미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를 마시는 자는 한때 사랑했던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되리라.’
레나타는 당장 주전자를 들어 올려,
그 안의 물을 마셔 버렸습니다.”
레나타가 끌어 안고 있었던 외로움과 고독이 얼마나 큰 무게였길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그 온 맘이 결국
증오로 변해버렸을까요.
이
증오는
차라리 레나타가 기억을 못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아침마다 레나타의 창가로 날아와 울부짖던 갈매기의 소리는 여왕에게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애걸하는 것이었어요.
그런 갈매기 소리를 레나타는 알 수가 없었을 겁니다. 증오가 넘쳐났으니까요.
희망은 있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증오의 마법을 이기리라.’
레나타의 마음에 사랑이 차오른다면,
갈매기 여왕이었던 때의 기억이 돌아올 것이었습니다.
레나타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키우는 증오라는 감정 속에서
옛날, 그 옛날 바위섬에서부터 그리워하던
사랑의 감정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코디언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머나먼 바위섬, 여왕의 옥좌, 그 가슴
저미던 그리움.
그동안 창문 밖에서
갈매기들이 그토록 애타게 외쳤던 말도.
“집으로 오세요, 집으로 오세요!”
레나타는 이 증오의 마법을 풀고 사랑을 찾아
다시 머나먼 바다 위 바위 섬에서
갈매기들의 여왕님이 될 수 있을까요?
작고 단순한 그림책이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는 내내 우리는 주어진 각각의 네모진 방 안에 갇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삶의 고단함에 지쳐 잃어버린 기억은 없나…되돌아보고
그래도 사랑하며 주변을 품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내게 속삭여 주는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깨닫습니다.
라트비아로부터 날아온 갈매기 여왕 레나타님을 만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