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클리벤의 금화 1
신서로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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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어클리벤의 금화 1

#황금가지 출판

#신서로 장편소설

#정통 판타지 문학

#브릿G 종합 베스트셀러 1위

 

피어클리벤의 금화 1권을 손에 들고 주말 내내 혼자 광분해서 연신 감탄을 해댔더니

식구들이 한마디씩 해댑니다.

“뭐야? 잭팟 터졌어?”

“응, 응, 완전!! 왜 몰랐지? 판타지. 진작에 연재하던 건데,,,,아…무조건이야.”

“뭔데? 빨리 읽어보고 말해 줘~”

“응, 응. 그런데……인터넷에 찾아보니까 8권짜리야. 권당 500쪽 약간 넘는 것 같아.

1권보니까~.”

“허걱……8권? 그런데 지금부터 호들갑이야?”

“응, 응. 너무 좋아.”

내가 알던 판타지 장르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정도……

모두 영화화 되어서 책과 미디어 양쪽을 입맛에 맞게 오가며 오랜 시간 동안 재탕, 삼탕.

그렇게 즐겼던 것 같아요. 특히 외국 판타지 소설들을 번역물로만 보던 나의 한계는 그 이상의 상상을 즐기기보다 그대로의 읽음에 만족하며 딱 거기까지인 장르물로 취급했던 것이죠.

 

 

그러나,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월등한 필력을 자랑합니다.

정통 판타지 장르를 강력한 한국어의 무게로 꾹꾹 눌러주니 장소가 북유럽 어디쯤이 되었던,

시대가 서양의 중세 어디쯤으로 올라가던 읽는 내내 던져 주는 떡밥들을 연신 주워갑니다.

새로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낯선 이름일지언정 자꾸 소리 내어 불러보면 척척 감기고,

탄탄하고 촘촘한 문장배치라 그런지 특별한 지도나 인물도 하나 없이 긴 서장부터 시작해도 시종일관 판타지 안에서 장대한 서막을 그려내는데 손색이 없습니다.

‘린트부름의 올바른 적생자’ 용, 지고의 존재 빌러디저드님과 울리케 피어클리벤의 담판

“너를 먹겠다.”

지상의 그 어떤 생물이 자신의 ‘한 끼 식사’를 향해 이러한 선언을 할 기회나, 필요가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려면 허기진 자와 ‘한 끼 식사’ 모두 지성과 언어를 같은 수준으로 공유해야 할 것이다.

 

장엄한 중세시대의 영지소설, 험난한 8권의 대서사를 향한 첫 문장입니다. 단순한 판타지 소설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흡입력을 지닌 도입부는 내가 무엇을 무기로 이 책을 읽어내려 가야 하는가, 야심을 갖게 만든 시작이었어요. 울리케는 가난한 피어클리벤 영주의 여덟째 딸입니다.

빌러디저드의 서리를 납치라 단언한 울리케는 먹고 먹히는 순간에 실수하지 않도록 치밀한 전략을 세워 대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세련되고 품격있는 어휘를 구사할 줄 아는 지성과 지식을 겸한 울리케의 응대는 단연 빌러디저드의 호감을 살만했어요.

"제게 양해를 구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제가 식용에 적합하다는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견해를 말할 권리 역시 생산자나 도축자, 혹은 유통자 그리고 그 전반을 관리 감독할 책임을 가진 누군가일 것이다. ‘음식’이 아니라.”

 

울리케는 정신을 가다듬고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적절한 수사와 태도로 일관하며 빌러디저드님과의 소통과 공감, 지성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서 부각될 수 있도록 긴장을 놓지 않습니다.

울리케의 대범하면서도 고도의 협상가 기질을 최대로 발휘하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한 장면 더 소개할까 합니다.

‘린트부름의 올바른 적생자’ 용, 지고의 존재 빌러디저드님이 묻습니다.

“왜 너희는 가난한 것이냐?”

왜 우리는 가난한가?.....

가난한 피어클리벤 영주의 딸, 17세 소녀 울리케가 답변합니다.

“어디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희 영지는 가용 농지면적이 적고, 특산물이라고는 말린 대구가 사실상 유일합니다만 그마저도 그리 대규모로 하고 있지 못합니다. 지난 세대, 중부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년들의 수도 부족합니다. 아이들은 많으니까 십여 년쯤 후에는 노동력이 늘겠지만 비축된 자산이랄 만한 것도 없어서 인구 부양력 자체가 높지도 않지요. 급격한 발전을 이룰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요소들이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까요.”

 

빌러디저드님과 울리케의 대화는 부의 가치와 정체, 경제, 국가의 동력, 권력, 세력간의 교섭, 정치적 지배에 이르는 묵직한 화두를 던져 줍니다. 이것은 단연 피어클리벤의 금화의 핵심 가치이며, 처음부터 판타지의 소재를 단순 먹이사슬 관계의 전쟁부류에서 벗어나 유토피아적인 세계관 요소로까지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린트부름의 올바른 적생자’ 용, 지고의 존재 빌러디저드님이 말합니다.

“나도 다른 형제들처럼 부에 관심이 있다. 다만 내가 형제들과 다른 점은 부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허영과 진정한 부를 탐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스스로 벌어들인 부인가 아닌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몸을 전부 덮을 만큼의 황금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일시에 그것을 세상에 내보내면 금의 가치는 급격하게 추락한다. 또한 금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을 다른 자산으로 전환할 수 없다면 단지 반짝이고 무거운 쇠에 불과하다. …(중략)…대답해보라, 울리케 피어클리벤. 만일 내가 너를 비롯한 인간을 먹기로 작정한다면, 내가 어떻게 이 땅에서 부를 도모하겠는가? 내가 단지 더 강하기 때문에 너희의 생명을 거두는 데 허락이 필요치 않다면, 너희의 재산을 강탈하는데도 허락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쌓은 부는 거래 상대를 잃을 것이며, 내 황금의 빛은 바랠 것이다.”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요. 경제 소설에서도 명료하게 찾을 수 없는 부의 가치와 정체에 대해 지고의 존재 빌리저드님이 명료하게 답변해 주는 장면은 아예 외워두려고 합니다.

 

중반부로 뛰어넘어 가볼까요?

집으로 귀향하던 울리케가 고블린족에 다시 볼모가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와중에 다시 빠져나갈 궁리 끝에 번뜩이는 묘수로 협상을 진행하던 울리케가 고블린 오십장, 아우케트 칸 아디우크를 이끌고 자신의 피어클리벤 영주 땅으로 돌아와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나는 확실히 나의 형제들보다 ‘대화’를 중시한다. 하지만 그 대화를 폭력으로 강요한다면, 과연 내가 대화를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이득과 합리를 위해 타인에게 불합리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그것이 결과적으로 아무리 모두에게 이롭다고 해도 말이다.”

울리케는 마음속으로 입을 벌렸다. 미처 그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과 논리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은연중 자신이 범하고 있던 오류를 생각했다. 자신의 앞에서 무심히 육포를 뜯고 있는 이 고블린이 그것을 지적해낸 것이다.

 

이 소설에는 트롤, 마법사, 고블린, 기사, 영주, 목동, 등등 다양한 인간군상과 마수들이 등장합니다. 이제 1권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할지 가늠이 쉽지 않지만, 서사구조에 따라 투명하게 드러나는 신서로 작가님의 단단한 가치관과 치밀하게 엮어내는 그만의 세계관에 주목해 봅니다.

사랑스러운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도 개성이 넘칠뿐더러 여성캐릭터들의

다양한 활동영역도 즐거운 감상 중 하나이며 인간과 마수들 종족간에

일어나는 이익 갈등과 분쟁, 권력싸움,

전쟁에도 대등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탁월하게 돋보이는 매력적 구성이지요.

트롤과 고블린의 세계를 존중하며 인간과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관계로

끌어갈 수 있다는 울리케의 확신과 신념을 확인해 나가면서 성장하는

협상 능력이 피어클리벤 영지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관철되고 수용되는지 그 긴긴 서사가 기대됩니다.

캐릭터들의 재치있고 대등한 말사위,

긴박한 전투씬,

빠르게 요동치는 종족간의 대화,

작가의 정교한 스토리구성…

무엇 하나 흠 잡을데 없는

피어클리벤의 금화 1권 단숨에 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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