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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맨해튼 비치…아빠도 그랬던 거였어.

#제니퍼이건의 작품 #깡패단의방문 이후 #맨해튼비치를 만났다.
무려 648쪽에 달하는 긴 장편이면서 1934년부터 45년간의 미국 역사가 배경이고, 해양소설이라는 점이 <맨해튼 비치>를 손에 집어 들기 전에 내가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였다.
제니퍼 이건의 문장 속에 빠져들기 위해선 배경지식부터 손대어야 했다.
대공황, 금주법, 갱스터, 돈세탁, 2차 세계대전 중 전시노동에 동원되었던 여성들, 일본의 진주만 공격 그리고 브루클린의 해군공창.
나의 상상력이 풍부해 지려면 나 또한 작가가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이뤄놓은 그 시대, 그 때, 그 장소로 날아갈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바다가 존재한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2차 세계대전 전시상황 중 미국이 어떤 선택을 통해 세계 위에 군림해 나가는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개인사를 바다에 투영하여 보여준다.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명상과 물은 서로 영원히 맺어진 사이다.
-허먼 멜빌, <모비 딕>
운명적인 삶의 포효, 바다에서
에디 케리건, 애너 케리건, 덱스터 스타일스 그리고 리디아.
1934년 맨해튼 비치. 에디, 애너, 덱스터의 첫 만남.
아일랜드 이민 2세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호소에서 보낸 에디. 에디는 천대받는 인종으로 이미 분류되었지만, 정직한 인품으로 그만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고, 한때는 주식 중개인으로 낭만적이고 넉넉한 삶을 살기도 했지만 대공황으로 급격히 시국이 어려워지면서 에디 또한 한 가정의 몰락한 가장이 된다. 에디는 같은 보호소에서 자란 갱스터 더넬런의 ‘백맨’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신조에 위배되는 일을 하는 동안 내면의 갈등을 겪는 모습을 둘째 딸 리디아를 통해 드러낸다. 리디아는 선천적으로 뇌성마비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리디아는 작가 제니퍼 이건을 통해 아주 특별한 존재로 그려진다. 에디는 더넬런의 일을 봐주는 것으론 리디아의 휠체어 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천성적 신념인 정직함에 위배되는 더 큰 위험을 자처하게 된다.
에디의 고민은 리디아를 보는 시선 곳곳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리디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의 내면에 깔려 있는 태생에 대한 업보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며 그가 누구인가를 묻는 듯 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념을 리디아의 휠체어와 맞바꾸어야 할 거액의 돈 때문에 뉴욕을 장악하고 있는 갱스터 덱스터 스타일스를 찾아간다. 애디는 정직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가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위법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의 내면의식이 갈등을 겪는 중 친구 더넬런의 죽음으로 비장한 결단을 하게 되고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홀연히 사라진다.
에디는 큰 딸 애너를 사랑하고,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고 단단한 아이로 키워내며 의지했다. 그리고 리디아. 자신이 마음 속에서 버린 리디아.
가족으로부터 도망친 후 바다에서 죽음으로 응징을 당할 뻔한 극적인 순간, 환상을 통해 그의 태생의 상징, 리디아를 만난다.
리디아의 이름이 입안에 동전처럼 걸려서 에디는 괴로운 마음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경쾌한 소리가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귀를 채웠다. 어럼풋하게나마 기억나는 목소리였다-애너도 아니었고 갑판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들떠서 신나게 쏟아내는가 하면 느릿느릿 더듬거리는 말. 아무 듯 없이 발랄하게 짹짹거리는 새의 노래 같았다.
에디는 뗏목에 누워 있는 몸을 빠져나와 열린 창문으로 흘러드는 음악을 들은 듯 소리의 근원을 따라갔다. 멈춰서 귀를 기울였고, 바람에 팔락거리며 반짝이는 리본을 잡으려고 두 손을 마주치듯 깔깔대고 재잘거리는 소리를 잡으려고 온 힘을 다했다. 그는 리디아를 따라갔고, 리디아는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웃었고, 말은 문장이 아니라 파도처럼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예전에는 무시했던 그 말을 마침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빠 애너 달려 엄마 바다 봐 엄마 박수 애너 바다 봐 아빠 뽀뽀 애너 달려 바다 봐 바다 보자 바다 바다 바다바다바다바다바다바다.
그 말들은 하나의 음, 단순히 오고가는 소리, 손가락으로 퉁기는 현, 심장의 박동이 되어갔다. 그의 심장, 리디아의 심장, 하나가 된 심장. 여기 모든 것의 근원에 놓인, 바다 밑바닥에서 시작된 진동 같은 진실이 있었다.
p.600
애너 케리건은 어느 날 불현듯 사라진 아버지의 부재로 엄마와 장애아 동생인 리디아의 부양을 책임지며 강하게 살아나가야 하는 여성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남자가 없다. 그래서 여성들의 부역이 절실했으며 활발하게 여성노동이 급물살을 탄 계기가 되었다. 애너라는 이름은 작가가 안나 카레니나의 인물에서 따왔다고 한다. 애너 케리건의 네이밍 탄생의도를 알고 부르는 그녀의 이름은 더욱 의미가 깊다. 브루클린 해군공창에서 단순노역을 하는 애너는 그녀의 삶에 만족할리가 없다. 매일 변화를 꿈꾸며 자전거를 타고 속도를 낸다. 유일하게 그녀가 자유를 느끼고, 살아있음을 포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이버를 만나게 된다. 여기는 바다다.
남성들도 하기 힘든 다이버의 일을 동경하며 자신의 숨처럼 여기는 애너. 치욕스런 성적 차별대우와 능력을 무시당하는 모멸감, 그리고 거칠고 억센 다이버의 원초적 세계가 짓누르는 사실적 무게감. 이 모든 것을 애너는 감내하고 바다로 나간다. 이겨내고 다이버가 된다. 바다를 포용한다. 애너는 아픈 동생 리디아에게도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바다를 보고 나면 리디아도 그녀처럼 새로운 환상과 꿈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서 애너는 덱스터와 두 번째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셋은 맨해튼 비치에서 다시 선다.
기이하고, 격렬하고, 아름다운 바다. 바로 애너가 리디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세상 구석구석에 가닿는, 수수께끼 위에 드리워진 반짝거리는 이 커튼을. 애너는 동생에게 팔을 둘렀다. “리디.” 담요 아래 귀가 있을 법한 곳에 대고 애너가 말했다. “바다 보여? 저 소리 들려? 바로 네 앞에 펼쳐져 있잖아 – 너한테 주어진 기회야. 지금, 리디. 지금!”
바다를 봐 바다를
바로네아페. 리디! 리디!
또리들려?
치얼썩 치얼썩 치얼썩 바다
p.249
덱스터 스타일스는 이탈리아 이민노동자 출신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갱스터들에 대한 복종스러운 상납처사에 자신의 이름마저 미국식으로 개명하며 신분상승을 꿈꾼다. 자신의 신분이 걸림돌이던 덱스터는 갱스터의 최고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Q의 부하로 일을 하게 되고, 군인 귀족 은행가 아서 베링어의 딸과 결혼하여 가족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덱스터의 계획과는 어긋난 일들이 일어난다. 덱스터는 자신의 세력을 탄탄히 구축한 틈을 타 세계자본시장의 흐름이 전쟁의 이익국인 미국쪽으로 기울어 더욱 호황할 것을 예상해 정의롭고 합법적인 금융업을 도모하길 계획한다.
그렇지만 결국 갱스터 최고 권력자 Q, 그리고 장인인 아서로부터도 내침을 당하게 된다. 어느 쪽에서도 흡수되지 못하고 이민노동자로서 쓰다 버려질 운명이었던 그였다. 덱스터는 애너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만나게 된다. 덱스터는 깊은 심해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고 그 끝은 죽음이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으나 이미 물의 존재로 거듭났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과연 마술처럼 몸이 뜨기 시작했다. 희열에 찬 그 순간 덱스터는 신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날고 있었고, 둥둥 떠오르고 있었고, 물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 전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인식이 주는 맹목적인 감각이 그를 덮쳤다.
그래, 그는 생각했고, 잠시 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어떤 본원적인 것, 세상 모든 것의 기저에 깔려 있는 무언가에 마침내 눈떴다. 몸에 속도가 붙으며 로프 위로 날아오르는 사이 다이빙 슈트는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올랐고, 팔을 굽힐 수 없을 만큼 팽팽해져 헬멧의 다이얼에 손을 뻗을 수도, 더는 줄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너무 황홀했다. 당연하잖아, 그는 생각했다.
몸이 로켓처럼 빠르게 치솟는 와중에도 마침내 눈뜬 중대한 진실을 마음속에 고이 봉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정신이 팔렸다.
p.511~512
리디아는 바다의 정령이다.
이 소설 <맨해튼 비치>에서 모든 등장인물을 연결짓는 물의 정령이다. 아빠 에디의 내적 갈등의 원인이었던 선천적 장애라는 태고의 문제를 안고 애너의 강한 삶에 대한 집착과 살아야 한다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연장선상에서 덱스터의 운명적 전환점을 상기시키는 리디아는 그들을 바다로 끌어들이는 정령이 된다. 리디아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로 거듭나고 애너가 덱스터의 새 생명을 품는 순간에 함께 하는 것 같다.
덱스터 스타일스와 밤을 보낸 후 처음 느끼는 생생한 감각 속에서 애너는 리디아에게서 풍기던 우유와 비스킷 향을, 부드러운 살과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뒤틀린, 미완인 채 굳어버린 동생의 몸. 집요하게 팔딱이던 동생의 심장 그리고 가냘픈 거미줄처럼 언제나 애너 곁에서 떠도는 꿈, 리디아가 정상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꿈.
그 꿈, 달리는, 아름다운 소녀. 햇빛 속에서 섬광처럼 휙휙 움직이는 양 무릎. 시야 한구석에 소녀가 휙 나타났다. 어쩌면 애너는 지금 그 소녀를 소생시키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p.581
<맨해튼 비치>이 도입부를 천천히 읽어내려 가면서 속도가 점점 붙어 올랐다. 제니퍼 이건의 문장은 어느 순간 나의 감정을 밀고 당기는 데 충분한 산소통이 되어 있었다. 덱스터와 애너의 치정이 불붙는 순간은 나도 같이 섞여 나뒹구는 기분에 한동안 휩싸여있을 정도였다. 약간의 아쉬움은 감독관 보스와의 관계인데, 점 더 비중있게 그렸으면 어떠했을까 싶은 생각이다. 나는 여전히 보스씨의 안부가 궁금하다.
<맨해튼 비치>를 통해 1930~40년대의 미국역사를 관심 있게 집중해 볼 수 있었고, 험난했던 여성들의 고된 삶, 그리고 우리의 이 모든 것들을 아빠의 존재를 통해 다시 이해하고,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굴레를 두루두루 포용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