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내려와 들꽃이 된 곳
박일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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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려와 들꽃이 된 곳

 

박일문 님의 포토 산문 집을 손에 들었다.

먼 타국 땅에서 남녘 땅 깊은 산골짜기까지 이 책 한 권 안에 인생이 들어있다.

잠 못 드는 밤 서성이는 곳은 달라도 별들은 거기 그 자리에 있다.

별들이 내려온 곳에는 들꽃이 피고, 사람이 들고, 바람이 휘감아 하늘내들꽃마을의 봄밤을 부른다.

박일문 님의 시와 사진, 그리고 에세이를 처음 접해 만났는데 너무 맘에 들어서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특히, <참게> <달이의 머릿속>, <그리운 사람>, <바람>은 자꾸자꾸 보고 싶어진다.

<백야몽>

별들이 스러져 꽃이 피는지, 꽃잎들이 스러져 별이 되는지…….

별도 꽃도 총총 피어나는 하늘내들꽃마을의 봄밤!

어찌 잠을 이룰 수 있으랴.

- 너무 아련한 시말이다. 이 시와 함께 올려진 사진도 정말 맘에 든다. 별들을 노래한지 얼마나 오랜만이던가정말 하늘보고 별보고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아도 별은 항상 그곳에 있>는데내가 변한 게 맞는 거겠지……

 

<아무도 모르는 하늘내의 진실>

드디어 텅 비었다.

가로등 스위치를 껐다.

그러자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내들꽃마을에 다시 하늘내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늘에도 땅에도…….

 

- 아무에게 보이지 않는 진실. 기다리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보이지 않아야 마침내 보이는 길. 그 길은 내어 주는 자에게만 흘러가 쏟아내는 사랑인가보다. 너무 맘에 드는 시다. 꼭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시……

 

<살아 있는>

우중 산책이라!

또 다른 맛이 있다. 숲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하고, 숲 가운데 나는 모처럼

여유 있는 호모사피엔스가 되어 온몸의 감각 기관을 총 동원하여

비와 바람이 실린 날것들을 마주한다……

 

거기엔 잡것이라고는 없다. 생명으로 가득하다. 나도 그 일부분인가? 아니면 한갓 이물질인가?

한참을 생각하다 시큼한 산딸기 한 주먹을 먹고서야 깨닫는다. 나도 자연의 일부임을…….

산책길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도라지꽃이 유난히 청초하다.

 

- 우울한 날 오히려 비가 반가울 때가 있지 않은가……약간 쌀쌀한 바람, 닭살 돋는 피부, 쭈삣쭈삣 서는 털들…… 내 몸은 잡것일지 몰라도 들이쉬는 이 숨은 본능적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 허기져서 먹고 보니 배부르고 내쉬어보니 가슴 후련하다.

 

 

<익숙한 얼굴>

숲에 들었다.

폐가 벌렁거리고 들숨 날숨이 길어진다.

혀를 길게 빼고 숨을 내쉬어 봤다가, 가슴을 쫘악 펴고 숨을 들이켜 본다.

그제야 숲속에 사는 친구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으름나무야 잘 있었니?

네 몸엔 한 무더기의 나비 떼가 앉았구나!

매발톱아!

쑥대밭에서 용케도 꼿꼿이 잘 자랐구나.

……

- 나도 꼭 이 시처럼 인사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을 이겨낸 이름들에 경의를 표하며 그에 꼭 알맞은 의식을 치워주면서 말이다.

 

<자식놈>

……

온몬이 만신창이다.

옆구리 한쪽은 움푹 패였고,

허벅지와 배 사이에 굵은 볼펜 두께의 구멍이 두 개나 뻥 뚫려 있는 게 아닌가?

한눈에 봐도 이건 멧돼지 녀석의 소행이다. 산에 갔다가 한판 붙은 모양이다.

싸우다 미처 몸을 피하기 전에 성난 멧돼지의 송곳니에 찔린 것이다.

이런……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

산아!

나랑 더 오래 같이 살자꾸나!

 

- 반려견인 산이, 강이, 달이의 이야기가 얼마나 정겹고 따뜻한지 모른다. 읽는 내내 우리 강아지도 생각나고, 나를 두고 먼저 별이 된 반려견들, 우리 동네 떠돌이 강아지들, 정말 많이 생각났다.

 

<그리운 사람>에 나오는 몸이 불편한 후배 아저씨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서글펐다. 천성이 아픔인지라 세상 나서기 두려워 어두움으로 살아왔을 그의 말주변에 마음이 저며왔다. 뭐든지 말 할 수 있을 때 다 털어버리기로 작정한 듯, 주섬주섬 흔적을 남겨 두는 후배 아저씨. 멀리서 별이 되어 내려온 그를 야생꽃 바라보듯 어쩜 그리도 아픔을 덤덤하게 투박한 듯 건네는 건지.  감정 사이에 문장 사이에 불편함이 전혀 없는 조용한 경청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박일문님의 글의 힘이 너무 좋았다.

 

<참게>도 마찬가지였다. 쉬지 않고 참게의 동선을 따라 똥통에서 섬진강으로 무엇이든 순환이 되지 않으면 막히는 법이어서 순리대로 이치대로 살아야 함을 잠시 묵상했다.

 

 

 

 

<담장 너머의 기억>

녹슨 양철 지붕 위,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오래된 골목길, 새로 해 넣은 새뜩한 파란 대문 집 돌담 너머,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 한때 둥근 등을 가진 할머니가 뻔질나게 들락거렸을, 이제는 펋고 누런 배암들의 안식처일 오래전 문 굳게 잠긴 빈집, 주인 잃은 정짓간 옆 돌확……

가장 이른 봄에 피어나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산수유꽃, 그 꽃에서는 참 골고루 가난했던, 그래서 더 좋았던 아득한 유년 시절 동무들의 채취, 두엄 같은 구수한 고향의 냄새가 난다.

그 봄날, 돌담 너머로 멀리 하얀 종아리만 보여도 아지랑이처럼 현기증이 피어올랐던 옆집 옥이 누나는, 지금은 어디에서 눈물 같은 산수유꽃 그리워하고 있을까.

 

- 어릴 적 외갓집도 딱 이런 집이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다 사라진 별이 되었지만, 돌담에 핀 민들레도 잡초들도 그땐 소중한지 모르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지금은…… 지금은….. 너무너무 그립다.

 

 

 

 <양 한 마리 요리까지>

……

아주 잠깐 동안의 기도가 끝나고 이윽고 양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몸에 작은 구멍이 내지고 그 구멍으로 곧장 손을 넣어 심장의 기능을 일순간에 정지시켰다. 정말 양은 순식간에 삶과 죽음이 나뉘었다. 겉으로 보기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양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남짓. 그렇게 선택된 양은 자신의 가죽 위에서 고기는 고기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순식간에 순식간에 해체되었으나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건한 의식 같아서 전혀 징그럽거나 혐오스럽지가 않았다.

내장 손질은 여자들의 몫인 듯 실을 감듯 척척 손발이 맞는다.

 

가죽은 가죽대로 따뜻한 겨울을 대비해 잘 손질되고 피 한 방울도 허투로 버려지는 일이 없었다.

 

처음 양을 그냥 땅바닥에서 잡아도 되나 싶었으나 이 역시 기우였다. 잘 벗겨진 자신의 가죽이야말로 가장 위생적인 장소였던 것이다.

 

……

 

- 유목민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자연을 경외하는 그들의 정신적 숭고함을 보면서 내가 함부로 진리와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궤변이나 않으면 다행일까……우리는 그 땅이 척박하다 할지라도 우주의 별들이 거기에도 내리고 들꽃처럼 아름다운 의식이 끝나면 축복의 기름진 음식이 있다.

<바람>

……

넌 어떤 바람이니?

어디서 태어났어?

난 엊그제 벚꽃 잎 피었다 지며

팔랑일 때 태어났어

그래서 내 몸에서는

찰랑거리며 거리에 쏟아져 내린

사람들이 가져온

쉰 김밥 냄새가 나

 

……

안녕

또 만나자

우리가 무슨 바람으로 불리우든

그때도 우린

좋은 친구일 거야

 

- 이 시는 너무 아름답다. 이 책을 통틀어서 별과 들꽃과 바람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모두에 대한 안부, 만남과 이별, 다시 만나길 소망하는 의미를 담아 나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각자

떠날 준비를 하자고

그러니 오늘 우리는

모두

봄바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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