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언론 자랑 - ‘소멸’이 아니라 ‘삶’을 담는 지역 언론 이야기
윤유경 지음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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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를 잘 읽지 않는 시대, 종이 신문 구독자 수는 점점 줄고 서울중심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지역 언론에 대한 관심은 정말 풀뿌리조차 찾기 힘들어진 요즘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 속에서도 지역의 풀뿌리 언론들은 존재한다. 이 책은 윤유경 기자가 ‘전국 언론 자랑’이라는 기획으로 만난 지역 언론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을 만나고, 소중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기록하고, 오래 남을 기사를 쓴다는 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전국 각지의 지역 언론이 쓰는 유일무이한 기사, 그 기사를 쓰는 유일무이한 기자들을 소개하는 이 책이 잊고 있던 기사의 가치, 언론의 역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처음에는 언론과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그러나 30쪽도 채 읽지 않아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이 책이 처음으로 소개하는 지역 언론은 <진안신문>이다. 진안신문은 공론에서 배제되어 있던 노년 여성들을 위한 글쓰기 교육, 발달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보듬센터를 운영한다. 맞춤법은 틀려도 의미는 아주 잘~통하는 어르신들이 쓴 일기와 기사를 읽으며 그간 글을 몰라 겪었던 서러움, 이젠 지역을 바꾸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렘이 물씬 느껴져 울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쭉쭉 이어지며 소개되는 이야기들. 심부름해 주고 그 삯으로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경남신문>, 산복빨래방을 운영하며 지역민들에게 다가간 <부산일보>, 한 사건을 18년간 취재한 <태안신문>, 대통령도 알고 있는 지역 언론의 모범 <옥천신문>,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파하는 <주간함양>, 지역 권력의 감시자 <뉴스민>, 지역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당진시대>, 지역 밀착형 보도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는 <경인 지역 신문>, 어린이 기자님들의 <어쩌다 특종!>, 지역의 숨겨진 보물을 추적하는 <중도일보>, 지역사의 초고를 만들겠다는 <거제신문>,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하는 <원주투데이>, 폐쇄적인 섬문화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는 우도의 <달그리안>까지. 이 책에 소개된 지역 언론 중 어느 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곳이 없었다.

책을 덮자 한 편의 휴먼 드라마를 본 기분이었다. 이게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니. 단순히 ‘단독’, ’특종‘이라는 표시를 달고도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같았던 기사들과는 전혀 다른, ‘진짜’ 사람 사는 곳의 ‘진짜’ 기사가 펼쳐진다. 단순한 언론의 역할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지고 소외된 사람들과 지역마저도 이어주는 언론의 순기능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동의 폭풍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하지만 마냥 감동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각 장마다 기자들이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과 직업윤리에 대한 신념과 생각을 읽고 있자면, 기자란 직업과 그들의 사명감에 대한 존경심에 박수를 절로 치게 된다. 나 역시 소멸위기 지역을 생각했을 때 그곳에서 생동감 있는 현실을 사는 주민들을 상상하진 못했었다. 그 구체적 사례들이 모두 담긴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를 깨달음과 동시에 이 책을 만나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이야기이다.

콘크리트 같은 각박한 현실을 뚫고 피어나는 언론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지금도 각지에서 열과 성을 다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주고,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가치 있는 기사들을 위해 힘쓰고 있는 지역 언론들에게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낸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를 다루는 마을 미디어를 통해 시민으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주체성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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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의로움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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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철학이 녹아있는 첫 챕터를 시작으로 헤르만 헤세의 인생관이 담긴 산문집이다.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 그가 그리는 자연의 순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련해지며 내가 보았던 자연에 대한 향수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전쟁을 겪은 후 헤세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긋는 경계를 보며 상처 입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는 자연의 모습에 경탄하고,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품어주는 자연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곧 그가 중요히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된다.

반면 점점 사라지는 자연과 그에 일조하는 인간들, 자연을 제대로 대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일침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지점이다.

자신을 순수한 방랑자, 유목민이라 칭하는 헤세의 사랑과 관심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 뿐 아니라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 사람에 대한 애정, 음악과 미술, 책에 대한 그의 단상이 가득 담긴 이 책을 읽으며 주위의 사소한 것들까지도 소중히 여기는 그의 삶의 자세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거나 알 수 없는 것, 내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것, 나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는 것, 나에게 아무런 호소를 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 자신은 더 초라해진다.“
책을 읽으며 유독 이 문장이 기억에 남았는데, 일상에 바쁘고 지쳤다는 핑계로 내 주위의 것들에 관심 갖지 못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한다. 내가 관심을 갖고 생각하며 사유할 때 비로소 나의 세계는 더욱 풍성해짐을 다시금 느낀다.

역시 읽는 즐거움, 읽는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가이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나도 많아 책을 읽는데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만큼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 잡는 문장들이 많았단 소리. 그 한 문장마다 멈춰서며 그의 정취를 가득 느끼고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을 밀고가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고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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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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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소설이다.
일단 느낌대로 책을 쭉 읽은 뒤, 덮자마자 코멘터리 북을 찾았다.
초반부터 작가님 왈 ‘더 힘들고 복잡한 얘기를 써볼까?’
예, 성공하셨습니다.

음기가 강한 옥녀산이 자리 잡고 있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딸기 농사를 짓는 ‘을주’의 시점에서 첫 장면이 시작된다. 상큼한 딸기향을 연상하고 있는데, 그러자마자 나온 것은 ‘욕받이 라이브 한 시간 전’. 롸?

그때부터 이 책에 대한 이미지는 반전되며 현실적인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의 노골적인 언어들을 마구 뿜어낸다. 그리고 그 인터넷 방송을 연출하는 ‘둘희’가 등장한다. 둘희는 영화감독 ’한기연‘의 골수팬으로 그의 모든 발자취를 아카이빙한 페이지를 운영하다가 불륜 스캔들, 표절 시비,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던 그녀를 직접 만나게 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된다. 영화감독의 연인은 왜 이런 시골에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이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일까.

책은 처음부터 친절하게 인물들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 시간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딸기와 물의 이미지가 합쳐진 상큼한 표지를 보고 가벼운 이야기를 상상했다가 큰코 다칠 수도 있다. 대신 각 인물들이 가진 과거와 욕망, 비밀과 상처들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마지막 장에 다다르며 마주하게 되는 반전에 ‘오호~?‘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땅과 멀리 떨어진 ‘난바다’, 땅과 가까워지는 ‘든바다’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느낀 이 책은 결국 현실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든바다 같은 사랑 이야기이자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생각하면 (아직은) 난바다 같은 이야기로 읽혔다. 아직 파도 속에 허우적대고 있을지 몰라도 언젠간 하늘의 무지개로 뜨겠지.

작가님의 부끄러운 특기라는 ‘진지하고 느끼한 말들’을 읽으며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사랑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하는 문장들을 만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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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하다 앤솔러지 3
김남숙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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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다, 되돌아보다,
보고 싶은 것을 보다, 응시하다, 나를 보다

이번 <하다> 앤솔러지의 세 번째 작품 『보다』를 읽고 내가 느낀 각 작품의 ’보다‘라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책의 제목대로 ‘보다’를 주제로 다섯 작가들이 써낸 다섯 편의 글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던 ‘보다’라는 행위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지며 내 시야 또한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한 행위의 의미를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니. 보는 것과 관련된 여러 비유와 은유를 읽으며 즐거웠다.

이번 『보다』의 작가님들은 다 초면이었는데 초반 세 작품이 너무 좋았다. 이게 앤솔러지의 장점인 것 같다. 여러 작가님들을 새로 알게되는 즐거움!!

폭행 피해자와 가족의 망가짐, 멈춘 시간과 그 속의 나를 마주 본다는 것. 마주한다고 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𓈒𓏸 𓂂𓈒 김남숙의 「모토부에서」 𓂂 𓈒𓏸

타인의 행동에 자신을 맞추고, 무언가를 보여주면 보고, 말을 걸면 대답하고, 웃어주면 웃던 혜임이 할아버지를 찾아간 종묘원에서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되돌아‘본다’. 그때 떨어지는 세 개의 별의 아름다운 순간과 약간의 미스터리를 담은 𓈒𓏸 𓂂𓈒 김채원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 𓂂 𓈒𓏸

계절마다 외국에 있었다는 ‘그’는 훗카이도의 최북단 왓카나이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는 과거 한 선장이 ‘바다로 나가면 내 미래가 거기에 있을 수 있다고, 뭔가 바뀔 것 같다’고 했던 말을 회상하며 누군가 정박해놓은 요트에 오른다. 하지만 거기서도 그는 자신을 바라보지 못한다. 대신 그는 봄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풍경, 다른 사람을 기대하며. ‘그는 지금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다’로 끝나는 이 소설은 그렇기에 그가 왜 계절마다 외국을 다니고서도 아직 자신을, 삶의 이유를 찾으러 다니는지 보여주는 것 아닐까. 오히려 그는 살아갈 이유를 찾기보다는 타국의 이국적인 틈 사이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위로받는 느낌인 것일까. 겨울과 참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𓈒𓏸 𓂂𓈒 민병훈의 「왓카나이」 𓂂 𓈒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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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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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검은 형체가 바닷속에서 자기네 가까이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몸을 숙여 그 형체를 잡았다. 큰바다쇠오리였다.“
죽은 큰바다쇠오리를 구해 파리의 박물관에 박제로 만들 생각이었던 오귀스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살아 있는 큰바다쇠오리를 잡게 된 것. 절망에 빠져 곧 죽을 줄 알았던 이 새는 그 생각이 무색하게도 인간들 사이에서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덧 오귀스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가 되어가기 시작하는 이 새의 이름은 ‘프로스프’이다. 둘의 첫 눈맞춤, 첫 산책, 첫 포옹, 첫 이사, 첫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별까지를 그리는 이 책의 모든 장면,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선생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치가 있을 수 있어요. 자연사 박물관 말고도 선생님의 새를 탐하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하지만 새와 친해지며 겪는 다정한 순간들도 잠시, 큰바다쇠오리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문은 큰바다쇠오리의 기름, 뼈, 가죽, 고기까지 모든 부분을 탐하는 인간들의 욕심에 더욱 불을 붙인다.

사실 오귀스트와 프로스프가 만난 1800년대 초반은 멸종에 대한 개념 자체가 널리 퍼지지 않은 때였다. 동물은 그저 팔거나, 잡아먹거나,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프로스프를 지키고 멸종을 막기 위해 다른 큰바다쇠오리를 찾아 다니는 오귀스트와 프로스프의 여정이 펼쳐진다.

“만약 어느 날 이 새가 사라진다면 무언가 아주 슬픈 일이 벌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의 어떤 부분이 사라질 것이고, 가혹한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 사라질 것이었다.”

이 책은 동물의 멸종에 일조하는 인간들과 그 앞에서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오귀스트가 프로스프를 만나며 겪는 변화와 갈등을 담담히 그려낸다. 멸종하는 동물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마지막 한 동물의 죽음으로 한 세계가 사라진다는 것의 감각 앞에서 바다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것 같은 감동, 슬픔이 남는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모든 게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결국엔 슬프게, 음울하게, 까닭없이, 난폭하게 종말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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