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접근은 그림자와 영혼의 차이를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그림자는 영혼보다 오히려 육체의 편에 있다. 그림자는 눈에 보이지만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영혼이 내면성의 영역, 표현되지 않은 진실의 영역에 속한다면, 그림자는 눈물이나 웃음이 그렇듯이 외면성의 영역, 표현되고 연기되는 것의 영역에 속한다. 이는 사람이 된다는것과 영혼을 갖는다는 것이 별개의 문제임을 뜻한다(슐레밀은 끝까지 자신의 영혼을 지켰지만,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그들 중한 명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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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는 가끔씩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다음생을 상상해 보곤 했다. 다음 생이지만 할머니는 과거로갔을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왜 다음 생은 꼭 미래라고만 생각할까. 다음 생에서 과거로 간 할머니가 폭이넓은 머리띠를 하고 손바닥만 한 체크무늬 핸드백을 메고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되면 아마도.
막내 고모와는 친구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못 만나고 인생의 또 어느순간에 겹쳐지고, 어떤 지점에 서로 달라지고 또 다른순간에 같아지고, 그러나 이런 곡절에도 어디서든, 무엇이 되었든 할머니와 막내 고모는 헤어지지 않겠지.
어쨌거나, 조만간 다시 태어날 작정이라면,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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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로 받은 소설. 선한 마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는 극사적 에로스, 속 그녀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몸과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서도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게 바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가 2009년이었으므로, 한국은 이제 막 잘 흐르고 있던 강을 둑으로 막고 청계천의 물이 역류하여 고이는 걸 모른 척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극사적 에로스와 상관없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 안에서 변화한 그 무엇인가였다. 발언하는 나, 누군가에게 호명되기만 하는 게 아닌 호명하기도 하는 나.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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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의 말을 기억하는 것처럼 아이네아스의 말도 기억한다. 그 말이 내 삶의 피륙, 내가 천을 짜나가는 날실이기에 모든 단어를 기억한다. 아이네아스의 죽음 이후로 나의 모든 삶은 미처 끝나지 못한채 베틀에서 찢겨 나간 피륙 같을지도,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뒤엉킨 실들의 모습 같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베틀의 북이 항상 시작점으로 돌아가 일정한 모양을 찾아내어 거기서 계속해 나가는 것처럼 내 마음도 처음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천 짜는 사람이 아니라 실 잣는 사람이었지만, 천 짜는 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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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부터 끈질기게 사실이기를 소망했으나 내심 믿지는 못했던 명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술과 문학이 목적성을 갖는 것이었다. 우리가 까다로운 진실을 표현하는 능력을 가다듬는 것이 이 망가진 세상을 수리하는 영속적 작업에서 도구가 되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펜이나 붓이 정말로 칼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모스크바에서 사흘을 보내는 동안 깨달았다. 특정 시기와 특정 장소에서는 내 소망이 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라딘 eBook <경험 수집가의 여행> (앤드류 솔로몬 지음, 김명남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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