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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평점 :
* 책 제목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 이별의 푸가
* 저자 : 김진영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함께한 날 : 2019.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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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에게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두 번째 책. 작년 겨울 <아침의 피아노>를 읽고 그 여운에 빠져 김진영 선생님과 그 책을 얼마나 ‘예찬’하고 다녔는지 모른다. 짧지만 힘 있는 문장들과 함께 울고 미소 지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했다. <아침의 피아노>와 함께 시작한 해의 한가운데에서 이번엔 이별 일기 <이별의 푸가>를 만났다. 선생님의 사유는 이별에 다다라서도 아름답구나. 선생님의 글을 옆에 두고 읽고 또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고민하면서도 ‘이별’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아파하느라, 힘들어하느라 도대체 ‘이별이 뭔지’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또 이별을 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사랑과 이별이 별개가 아니었다.
이별의 이야기는 결국 사랑의 이야기였다. 내가 사랑을 대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유치했던 추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사람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맺힐 때도 있었다. 그리고 사랑의 부재 즉, 이별에 관한 사유는 나를 한없이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이별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아려왔다. 사랑이 부재할 때 우리는 당황, 슬픔, 아픔, 분노, 초연 등 다양한 감정으로 버텨낸다. 하지만 버텨낸다고 끝이 나던가? 다른 감정으로 변모하여 우리 옆에서 계속, 함께 하지는 않았던가? 책 속의 문장처럼 사랑과는 이별을 해도 이별과는 이별할 수 없는 걸까? 나도 모르던 내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는 ‘사랑의 부재’의 순간에 우리는 더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또한 우리와 이별했지만, 그 부재의 공간을 아름다운 글로 채워 주셨다. <아침의 피아노>와 함께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내 마음속에, 머릿속에 넣어두고 싶은 문장과 사유.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사랑과 이별의 순간에 위로가 되어줄 것이 분명하다.
문장과 함께 고요하게 침잠하며 읽어야 하는 책.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고 이별하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 책 표지 디자인, 폰트마저도 글의 감성을 완성시키는 요소이다. 어느 하나 놓치지 말고 충분히 만끽하자.
+ 함께 읽고 싶은 책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 푸가 : 하나의 주제(때로는 2개 혹은 3개의 주제. 이 경우에는 2중 푸가 혹은 3중 푸가라고 한다)가 각 성부 혹은 각 악기에 장기적이며 규율적인 모방 반복을 행하면서 특정된 조적(調的) 법칙을 지켜서 이루어지는 악곡이다.
** 나에게 온 문장
- 책에 담긴 모든 문장......
(그래도 옮겨보자면..)
- 우리도 그랬던 거야, 당신이 떠내려올 때 마침 나는 거기에 있었고, 내가 떠내려올 때 마침 거기에 당신이 있었던 거야. 당신은 나를 건지고 나는 당신을 건지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마침 그때 거기에’라는 오래된 우연의 신화로 시작된 거야,라고 나는 말한다.
- “사랑의 기쁨은 그 사람의 발견만이 아니다. 그건 내 안에 들어 있던 나도 몰랐던 나들의 발견이다. 세상에, 내 안에 이런 비밀스러운 부드러움이 있었다니, 이런 다정함, 이런 친절함, 이런 예민함, 이런 애착과 기쁨이 있었다니 …… 그러나 사랑의 기쁨은 역시 그 사람의 발견이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나 혼자였다면, 나는 내 안의 놀라운 비밀들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테니까.” - 마르셀 프루스트, <기쁨의 나날들>
- 나는 네가 내 얼굴에 문장들을 쓴다고 생각했었다. 내 얼굴은 이제 네가 시선으로 쓴 문장들로 가득한 텍스트다. 그 텍스트 위에 나는 또 무엇을 쓸까.
- 사랑이란 뭘까? 그건 자기도 모르게 내가 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서로가 서로의 몸속에서 하나의 장기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떠나도 내 몸의 장기가 된 사람은 여전히 배 속에 남는다. 그 사람은 사랑이 끝났어도 나의 타인이 아니다.
- ... 그러나 나를 다시 찾아도 나의 슬픔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석고상처럼, 화석처럼,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은 나의 슬픔을 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슬픔 곁을 지나쳐간다. 마치 파도들이 암초를 지나가도 암초는 남듯이. 그리하여 시간이 증명하는 건 시간이 아니다. 그건 슬픔이다.
- 우리 만나요,라고 나는 그 사람과 약속한다. 그리고 그 시간 그 장소로 간다. 그러면 그 사람이 그때 거기에 있다. 이건 기적이다. 기적이란 뭔가? 그건 약속과 실현의 동시성이다. 기적 안에서 약속과 실현은 동어반복이다. 약속은 곧 실현이니까. …… 사랑의 황홀함은 약속의 황홀함이다. 약속하고 가면 그 시간 그 장소에 그 약속이 실현되어 있다. 그 사람의 눈이, 손이, 목소리가 기적처럼 정말 거기에 있다. 나는 그저 말로 약속을 했을뿐이건만……
- 사랑과는 이별을 해도 이별과는 이별할 수 없는 걸까?
- 산다는 건 시간 속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시간 속을 지나간다는 건, 매 순간 우리가 우리를 떠난다는 것, 우리 자신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매 순간 존재하는 단 한 번의 우리와 매 순간 이별하면서 매 순간 다음 순간의 우리로 달라진다는 것. 그것이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 그것은 매 순간 우리 자신과 이별한다는 것이다.
- 당신의 부재 앞에서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 그건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리 있다는 것이다. 그건 어떤 상태일까. 나는 당신에게 매달려 있지만, 당신은 나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가장 뜨거우면서 가장 차가운 사람이다. 나의 머리는 온통 당신으로 가득해서 터질 것 같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