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타라 납치사건
데이비드 I. 커처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 책 제목 : 모르타라 납치사건

* 저자 : 데이비드 I. 커처

* 출판사 : 문학동네

* 함께한 날 : 2019.7.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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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장악했던 한 시대가 저물고 혁명과 자유와 계몽의 신세계가 도래할 때 이탈리아의 역사를 바꾼 ‘유대인 소년의 납치사건’이 일어났다. 1858년 6월 볼로냐.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친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여섯 살 난 아들 에드가르도를 연행하는 것. 아이는 가족이 모르는 사이 세례를 받아 기독교도가 되었고 교회법에 근거해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는 이유다. 아이를 되찾으려는 아버지와 그를 조력하는 유대인 공동체의 사투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바티칸의 권위는 치명타를 입는다. 교황과 대립하던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기회 삼아 통일 운동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역사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왜 이제 알게 되었을까. 세계사 수업을 하며 또 이탈리아 역사를 공부하며 종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다뤘지만 ‘모르타라 납치사건’은 처음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 같지만 근대 유럽 사회의 역사와 그 축을 같이 하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다.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를 되찾으려는 가족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반면 이탈리아의 역사와 결합된 이야기의 전개는 감탄에 감탄을 더하게 만든다. 방대한 자료조사 덕분에 내가 그 시대,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사건들을 파악해 나갈 수 있다. 정말 매력적인 작품!!

 

종교와 세속의 대립은 우리 역사 안에서 늘 있었다. 문제는 그로 인한 희생. ‘종교’가 권위와 힘을 갖게 되면서 개인에게 희생과 복종, 계율을 강조하고 관용보다는 형식을 앞세운 모습으로 타락하며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르게 되었다. (작품 안에도 형식을 내세우는 종교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과연 종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또,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소수의 특정 인물인가, 다수의 민중인가’를 생각해보며 역사의 원동력을 파악해보기에 좋은 작품이다.

 

 

얼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시선으로 풀어낸 모르타라 납치사건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개인이 감내하고 있는 아픔들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2019.7.15.

 

*** 나에게 온 문장

-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수 세기를 지배해온 정권들이 빗자루에 쓸리듯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이탈리아반도에서는 교황권과 종래의 권력이 장악해온 구세계가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 근대 산업과 과학, 상업의 추종자들이 낳은 이종異種의 후손을 불편한 심정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옛것과 새것을 지키려는 자존심 센 투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대를 경계했다. 양 진영은 각자의 깃발을 흔들면서 자기들만의 진리를 읊조렸고, 각자의 우상을 숭배하고 각자의 영웅을 찬양했고, 각자의 적에게 경멸을 퍼부었다. 혁명가들은 억압받는 현재와 사뭇 다른 유토피아적 미래를 꿈꿨다. 자유주의자들은 입헌 통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 질서를 그렸다. 심지어 보수주의자들마저 구질서가 더 버틸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신들이 태어나고 있었고, 그들은 새로운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 압제에서 벗어난 유대인들이 한껏 실리를 취한 것은 새로이 얻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통해서만이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계몽주의 사상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점점 거세진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한몫했다. 유럽의 유대인은 그들이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오래전부터 품고 살아왔지만, 자신들을 지배하는 세속 군주들의 행보에 영향을 줄 만큼 힘을 결집시키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고 타 지역 동포를 돕기 위해 개입하는 건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유대민족의 결집력에 정치적 영향력이 더해진 것이다.

- 문맹인 하녀와 상점 주인, 그리고 볼로냐의 한 유대인 꼬마에 얽힌 이야기가 이탈리아와 가톨릭교회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 황당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 이탈리아 마을 광장들을 장식한 조각상이 된 리소르지멘토 영웅들보다 안나 모리시─성적으로 문란하고, 찢어지게 가난하며,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가 이탈리아 통일에 훨씬 많이 기여했다고.

- 역사가의 관점에서 모르타라 사건은 여러모로 새 시대를 여는 발전상과 연계되어 있어서, 이탈리아 역사상 하나의 중대한 전환기에 활동했던 중심 세력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교황청의 세속 지배권 집착 배경이 된 세계관이나, 교황청이 19세기 유럽에 퍼진 자유주의적, 세속적 이데올로기와 충돌한 과정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사건은 없다. 뿐만 아니라 통일을 목표로 한 투쟁에 함께한 수많은 주요 인물이 모르타라 사건에 어떻게든 얽혀 있어서, 교황 피우스 9세와 국무원장 자코모 안토넬리, 카밀로 카보우르 백작,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 같은 결정적 인물의 당시 심리적 태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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