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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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프랭크 틸리]


나이가 어렸을적에는 참 불안했더랬다. 지금도 안정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어렸을적엔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다. 진로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쏟아지는 업무에 허덕이며 하루를 간신히 살아넘기는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 때 그렇게 철학책을 많이 읽었더랬다. 혹시나 그 책에서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답을 주지는 않을까. 머리와 가슴이 복잡하여 잠드는 것 조차 노력이었던 나의 답답함을 소화제처럼 해소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읽혔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절실함이 있었기떄문에 그 두꺼운 철학책들을 꾸역꾸역 읽어왔던 것 같다. 철학자들의 저작물을 혼자서 읽는 것은 철학과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걸어온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개론서, 철학사, 2차 저작물을 주로 읽었다. 그 때 읽었던 철학사 책이 람프레히트, 힐쉬베르거, 러셀, 이진경, 풍우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번에 프랭크 틸리의 서양철학사를 통해 철학사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읽었지만 큰 줄기만 기억나고 세세한 부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상태였다.

틸리의 서양철학사는 서양철학사답게 책이 두껍고 글씨가 작다. 고대철학과 중세철학까지가 책의 2/5 가량을 차지하는 것 같고, 나머지는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을 소개하는 분량으로 구성된다. 다른 서양철학사들과 다소간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사실 철학사를 다룬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는게 더 어려운 것 같다) 전반적으로 ​학자들의 주장을 다루기 앞서 역사적 배경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로 꼽는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려는 스탠스를 취한다. 사실 나는 철학적 견해라는 것에 완벽한 객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러셀이나 강신주 같이 자신의 견해가 강하게 드러나는 책은 아니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이것은 나름대로 장점이자 단점이다. 객관적으로 서술하여 미국에서는 교과서로까지 활용되는 책이지만, 그만큼 드라이하고 재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책이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 자체가 개념이 생소하고 어려우며 형이상한적인데 문체가 명료하고 단언적이긴 하지만 친절한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각각의 책은 각각이 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초심자들에게 개념이나 학자들의 연결, 영향, 흐름을 쉽고 굵직하게 제시해주는 책은 아닌 것이다. 어느정도 철학, 서양사에 대한 관심이나 기초적인 공부가 된 이후에 읽는다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개념들을 단단하게 구조화하기에 매우 적합한 책일 것 같다.

오랜만에 머리를 싸매면서 읽었던 책이다. 요즘은 일에 치여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책, 아니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가벼운 스낵같은 책들에 손에갔던게 사실이다. 두껍고 어려운 책은 따로 시간을 내서 책상에서 밑줄을 쳐가며, 필기를 해가며 읽어야 읽은 것 같다. 그래서 잘 안 읽게 됐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두꺼운 책을 통독으로라도 한번 훑고나면 괜스레 보람을 느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관조하게 된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별 것 아닌것 처럼 느껴진다. 오래 쓰지 않아 녹이 잔뜩 슬어있던 머리에 기름칠을 한 것 같은 개운한 기분이 든다. 물론 젊은날 나를 구원한 것은 철학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학책은 내 삶을 변화시킨 것은 분명하다. 틸리 서양철학사 간만에 너무 잘 읽었다. 앞으로도 바쁘고 헐떡이는 삶을 살겠지만 가끔 한번씩은 철학책을 꺼내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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