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동력 -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힘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김정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였다. K형은 군대를 다녀오더니 갑자기 바쁜 사람이 되었다. 모임에서 잘 보이지 않았고,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허투루 시간을 쓰는 법이 없었다. 시간에 대해서는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한 편이었다. 어느날엔가 얼큰하게 취한 형에게 물었다. 요즘 형은 왜 그렇게 인생을 물 샐 틈 없이 살고 있냐고. 그 형은 인생은 유한하고, 젊은 날은 짧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별 의식없이 젊은날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크게 와닿는 말은 아니었다. K형은 나와 연락을 할 시간도 없이 치열하게 살았고 우리는 그렇게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몇 년 쯤 지났을 때 친구로부터 K형이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문득 살펴본 내 모습도 어느새 K형의 모습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K형의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책 페이지를 넘길 때도, 끄적끄적 밑줄을 그을 때도.

아무런 연관성 없는 산업과 산업이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산업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정보의 홍수가 범람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이기에 바로 다동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다동력이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힘이다. 여러 가지 역량을 갖추는 것은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도록 할 수 있다. 한가지의 역량을 고도로 개발한 사람은 이제 현대사회에 너무나 많다. 그들은 또 다른 이에 의하여 쉽게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개발한 역량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역량을 추가로 개발하면 그것은 시너지를 발휘한다. '10명중에 1명이 가진 역량' 2개를 가지는 경우 '100명중의 1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예컨대, 변호사 자격증을 딴 의사는 의료분쟁과 관련된 소송을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고, 강력반 형사 출신의 작가는 누구보다 강력반의 세계를 소재로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냥 변호사와 작가로는 대체되기 어려운 경쟁력을 가진다.

이렇게 여러 가지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저자는 시간낭비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례허식이나 체면치레를 없애고, 새로운 것을 자꾸 시도해야 한다고. 주어진 삶은 유한하므로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살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뭔가 내가 늘 하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도 이렇게 농밀한 인생을 사는 것이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좀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자는 다행히도, 남이 뭐라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고, 주변 상황보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그럴까? 나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 보다 내 시간의 효율을 생각하면서 살면? 그러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걸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항상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 문제다. 이 책은 인생에 대한 목표의식이나 열정이 고갈된 사람에게는 그들을 반대편으로 끌고 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흑과 백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인생이란 것이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항상 균형을 잘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아, 그리고 나는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K형의 이혼소식을 들었다.

https://blog.naver.com/jspcp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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