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서디자인 기본 원리 29 -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편집디자인 안내서
김은영 지음 / 안그라픽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나도 일단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사무직과 문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 예전에 문서를 막 작성하기 시작했을 때, 왜 나의 상사가 문서의 내용이 아니라 글자 수, 자간, 들여쓰기에 연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좀 유별나고 고지식하기도 했지만, 그는 형식이 엉터리면 내용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는 나도 젊은 혈기에(지금도 젊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아니 내용이 중요하지 그 따위 형식이 중요한가? 이것은 불필요한 절차를 양산하며 업무효율을 저해하는 경직적인 탁상행정의 전형이다!‘라며 불만을 토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이제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받아보고 검토하는 단계가 되니까 왜 문서의 디자인이 중요한지 느낌이 온다. 라고 쓰고 꼰대가 되어간다고 읽는건가.

문서는 내 손에서 나온 하나의 창작물이다. 프로라면 자신의 창작물의 질을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나 혼자 보기 위한 문서가 아니고 상대방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문서라면 더욱 그렇다. 깔끔하고 명료하게 작성된 문서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 물론 문서의 높은 질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담기는 내용이 최우선이겠지만, 비슷비슷한 내용이라면 역시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법. 이를테면 요리도 마찬가지다.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어떤 플레이팅을 하는지가 그 요리의 품격을 나타내기도 하는거니까. 애플이 전자기기 시장을 선도하는 이유는 기기의 성능 때문만이 아니고 애플의 감성이라 불리는 그 디자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도 노트북 껍데기에 사과모양 불 한번 켜보겠다고 맥 OS를 붙잡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형식은 내용조차 압도하는지도 모른다(그는 결국 맥에 윈도우를 설치해 사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명품은 사소한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말이 ‘일 좀 꼼꼼히 하라‘는 사장님들의 공허한 외침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도 더 깔끔한 문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펼친 책. 후려쳐서 나누자면 레이아웃파트, 이미지파트, 텍스트파트, 소프트웨어팁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 파트에 담긴 정보는 상호보완적이어서 무 썰 듯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파트별로 내가 느낀 가장 중요한 점을 꼽자면, 레이아웃 파트는 위계와 강조, 일관성 / 이미지파트는 흐름 / 텍스트파트는 균형 / 소프트웨어팁은 암기(...)가 아닐까 싶다. 읽다보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은 부분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내용의 충실성을 담보로 형식의 조화로움을 갖추는 것은 문서와 작성자, 나아가서는 소속된 집단의 격을 올려준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이로 인해 ‘좋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문서를 디자인 한다는 것. 이것은 생각보다 이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깔끔한 문서라는 것은 물론 주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마치 집안의 인테리어를 예쁘게 꾸민다거나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거나 같은. 자신의 센스를 발휘하는 창의적 영역이자 기호 중 하나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디자인이 별로일 수도 있지. 하지만, 문서 디자인에 대한 무관심함에 문제의식을 제시한다는 것, 깔끔한 문서에 대한 참고할 수 있는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그리고 사실 인테리어든 옷이든 내가 한 것 보다는 책에 나온 게 ‘객관적으로‘ 낫다는 경험적 진리.

문서의 디자인을 다룬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적으로 보기 좋은 문서를 작성하기 위한 수요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뭄에 단비같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https://blog.naver.com/jspcp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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