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귄은 애초에 어스시 계획을 "동-정-동-정"으로 잡았던 것일까...
"어스시의 마법사"와 "머나먼 바닷가"가 상당히 동적인 진행인 반면에 "아투안의 무덤"이 상당히 정적이었다면, 이번 테하누도 머나먼 바닷가에 비해서 상당히 정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배경이 "곤트섬"에 한정돼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투안의 무덤처럼 큰 싸움이나 마법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 아투안의 무덤에서는 "무덤"이라는 배경 자체만으로도 판타지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테하누는 어찌보면 판타지같지않은 판타지 소설이돼버렸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말이 아니다. 지난 세권이 이틀이상 걸려 읽은 데 비하면 테하누는 하룻저녁에 독파해 버렸으니...
테하누의 시작은 "머나먼 바닷가"에서 아마도 레반넨과 새매가 머나먼 서쪽, 용의 섬 셀리더에 도착했을 때가 아닐까싶다. 거미줄 치는 작고 하얀 거미를 뜻하는 "고하"라고 마을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테나. 머나먼 바닷가를 보면서 15년쯤 흘렀겠거니 했는데, 시간은 이미 25년이나 흘러서 그녀의 나이도 어느덧 마흔정도 되나보다. 평범한 아낙네의 길을 선택한 그녀는 출가한 큰딸과 바다에 나가있는 아들이 있으며, 상처했다. 그래도 농장도 가지고있는 제법 부유한 생활에 종달새라 불리우는 친우도 생겼다. 그저 그렇게 그런 생활을 보내던 어느날, 종달새를 통해, 불에 데여 거의 죽기 직전인 아이 하나를 알고 맡게되어 "테루"라는 이름을 주고 키우게 된다.
이후로 오지언의 임종을 지키며, 초죽음이 돼 칼레신의 등에 매달려 날아온 게드를 보살피고... 테루를 쫓는 테루를 거의 죽음에 이르게했던 무리들로부터 쫓기고, 헤브너의 왕 레반넨을 만나고...
읽다보면 르 귄이 테하누에서 던지는 화두가 무언가 대충 짐작이 간다. 이전 편들에서 계속 "성장"에 관한 메시지를 드러내듯이 테하누에서도 역시 그렇긴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남과 여"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새우고 있다. 남자와 여자, 그 둘은 서로 어찌 바라보고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테하누에선 또 이전까지 드러내지않았던 어스시의 창조비사 하나를 말하고 있다. 바로 "인간용". 써놓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한데, 여튼, 태초에는 용과 사람은 같은, 하나의 존재였다는 것. 이후 서로의 가치관에 따라 용은 용으로, 인간은 인간으로 남게됐다는 것. 태고의 모습을 가진 "인간용"들은 이 두 무리를 떠나 멀고먼 서쪽 어딘가로 떠났다는 것. 세계관의 설정정도로 가볍게 보아넘길 수도 있지만, 실은 이건 테하누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태고의 모습을 가진 존재... 그리고, 그저 전설과 노래로만 전해져오던 "세고이"의 정체...
무엇보다 테하누를 보면서 즐거웠던 건, 게드와 테나의 러브스토리가 이루어진다는 거다. 아투안의 무덤에서, 게드가 그저 테나를 "데리고 나왔"을 뿐인 것으로 끝났을 때, 그리고 머나먼 바닷가에서 테나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을 때, 솔직히 상당히 실망했었다. '아... 둘이 잘 돼야되는 거 아냐 이거?? 테나, 왠지 불쌍하잖아~'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사랑이 무려 25년만에 결실을 맺는 것이다. 그토록 오랜시간 가슴에 게드를 담아두었던 테나, 그 오랜시간 자신의 정욕을 극복해내며 세상을 위해 자신의 할 일을 해야했고 테나에 대한 애틋한 마음조차도 숨겨야했던 게드. 게드가 마법을 잃고 마법사에서 한명의 평범한 인간이 된 지금에야 드디어 테나와 게드는 하나가 된 것이다. 이게 어찌나 읽으며 행복했던지... 물론, 돌아온 처음, 게드는 마법사로서 모든 것을 잃었고 사람들이 자신에대해 가지고 있을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는 수치심과, 오지언의 죽음 등등으로 처음에는 테나는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말지만, 시간은 게드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테루를 쫓던 무리가 테나의 집을 습격한 사건을 계기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테루의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다. 어쩌면 테하누의 주인공은 테루라 할 수 있으니. 자신의 부모로부터 버림받다못해 죽음에 까지 몰린 아이. 한쪽얼굴로부터 팔까지 불구가된 아이. 테나의 사랑으로써 점점 회복돼가는 아이. 왠진 모르겠지만 게드를 좋아하는 아이. 종국에는 자신의 엄마아빠(게드와 테나)를 구해내는 아이.
테루가 직접 입으로 게드나 테나를 엄마아빠라 부르는 것은 나오지 않지만, 이야기의 말미에 테나가 보는 광경을 "엄마가, 아빠가"라고 적어놓으므로써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끈으로 묶임을 보여준다. 이것또한 르 귄이 살며시 던져놓은 화두가 아닐까싶다.
어쨌든, 다음 이야기들은 이 테루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활약하지 않을까... 레반넨의 활약도 보고싶긴 하지만... 게드가 다시 마법력을 회복해도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