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정동현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_ 정동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저자의 다소 특이한 이력. 당구장 집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유통회사에 근무하던 저자는 어느 날 요리를 배우기 위해 영국 요리학교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불확실한 꿈을 위해 현재의 안정적인 일상을 포기하기는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대기업에서 요리 유학이라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선택이었기에 일단 흥미로운 시선으로 저자의 글을 읽어나갔다.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저자가 걸어왔던 시간 속에서 뽑아낸 41편의 삶의 이야기가 41가지 음식에 곁들여 책에 녹아들어 있다. 유학파 셰프의 음식 에세이라고 해서 낯설고 화려한 음식으로 꾸며져 있지 않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싼 음식 중 하나인 김밥을 통해 이타성과 애틋함을 느끼기도 하고, 힘들었던 학창시절 같은 기숙사를 쓰던 형이 사준 죽 한 그릇에서 일상에 대한 감사를 깨닫기도 한다.

 

환경이 바뀌면서, 생각이 바뀌면서, 저자의 앞에 놓인 음식 또한 계속 바뀐다. 어린 시절을 거쳐 낯선 타지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셰프의 길에 나아갈 때까지.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저자의 생각과 삶 그리고 아련한 추억을 엿볼 수 있다. 가벼운 일상을 다루는 듯하지만, 이상하게 먹먹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역시 추억을 이야기하기 때문일까. 박찬일 칼럼니스트의 군침 도는 글과 슬픔이 고이는 글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라는 평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끝까지 감성적이지만은 않다. 전문가의 글답게 음식들에 대한 뒷이야기나 부수적인 정보는 덤이다.

 

책을 읽고 나한테 추억이 깃든 음식은 뭘까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외할머니 표 닭볶음탕, 소풍 갈 때마다 엄마가 싸주셨던 계란주먹밥, 고등학생 시절을 함께 한 그리고 지금까지도 종종 찾는 롤스의 돈가스 덮밥, 애증의 학식 나누리 돈가스 등등 생각보다 적지 않더라. 음식 자체의 맛보다는 당시의 상황이나 기억이 몽글몽글함을 더 해주는 듯했다.

 

일상에 치여 정신없는 와중 기분 좋은 추억팔이시간이었다.

 

85p 분주함 속에 다시 찾아온 오늘, 기어코 찾아올 내일, 그사이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며 한 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문득 궁금해진다. 같은 하늘을 지고 사는, 저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숨 쉬는 당신, 당신이 씹어 삼키는 그 작디작은 한 숟가락에 담긴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