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송 전형필_ 이충렬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다.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조선에서 손에 꼽을만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간송은 범인의 삶을 택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라는 혼란스러운 시기, 편하고 안정적인 삶, 바깥의 상황은 외면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 땅에서 수없이 유출되는 문화재 수집에 전 재산과 삶을 기꺼이 바쳤다. 개인의 소장욕이 아닌 한 나라 문화의 온전한 보전을 위해 막대한 지출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 최초의 개인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이 탄생했고 귀중한 유물들이 우리 곁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설가인 이충렬 작가가 간송의 헌신적인 삶에 감명을 받고 수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세상에 내놓았다고 한다. 자료가 부실하거나 준비가 부족하여 중간에 포기할 것을 걱정해 간송의 유족들에게는 초안이 완성된 후에 감수를 받았다. 과거 사건과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다소간의 각색은 불가피했을 것. 상중에 자금을 함부로 동원할 수 없어 <몽유도원도>를 입수할 수 없었던 점, 평생의 스승인 위창 오세창을 만날 때의 장면 등은 저자의 허구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밝히는 조건으로 유족의 출판 승인하에 출간되었다.

 

간송의 행적과 삶은 그 무게를 헤아리기 어렵다. 처음에는 책 또한 그러지 않을까 하여 걱정이 앞섰으나 책을 펼친 뒤 괜한 고민이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귀중한 보물들을 간송이 입수하는 과정 하나하나는 어떤 드라마보다도 긴장감이 넘쳤으며 간송은 물론 연을 맺은 인물들 또한 매력적이었다. 일제의 눈을 피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기와집 열 채 값인 1만 원에 입수한 뒤 1945년 광복까지 비밀리에 보관했던 것,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질뻔한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을 가까스로 구해냈던 장면, 고려청자 애호가인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의 소장품 전체(20)40만 원(기와집 400채 가격)에 일괄 인수했던 장면 등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유지로 교육사업에도 힘썼던 간송은 위기에 처한 보성고보(지금의 보성중, 고등학교)를 인수 민족사학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후에 학교에서 막대한 규모의 재정 사고가 발생하여 온 가족이 빚에 허덕였음에도 단 하나의 소장품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광복 후, 문화재가 더 이상 국외로 유출되지 않기에 인수를 중단한 것과 더불어 간송의 문화 보전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은 1년에 단 두 번, 5월과 10월에 각각 2주씩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어렸을 적 부모님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적어도 3, 4번은 시도해야 겨우 관람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는 재개관을 위해 휴관 중이며 DDP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을 진행하고 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포함한 다수의 국보와 존 개스비에게 입수한 청자 및 백자 등이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시간을 내 가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