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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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Kindred)_ 옥타비아 버틀러

 

현대의 흑인 여성이 노예제 미국으로 간다면?

 

197669일은 내 생일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1815년의 메릴랜드다. 이제 나는 꿈 많은 작가 지망생도, 말썽쟁이 조카도, 사랑스러운 아내도 아니다. 축사의 짐승, 식탁 밑의 밀 포대나 다름없다. 삶을 스스로 통제할 자유와 권리는, 내게 없다. ...... 그리고 나의 이름은 검둥이가 되었다.

 

주인공 다나는 20세기 미국을 살아가는 흑인 여성이다. 백인 남편인 케빈과 가정을 꾸리고 작가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현대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현기증과 함께 다나는 1815년 미국 남부의 메릴랜드 주에서 눈을 뜨게 되고 자신의 먼 조상인 백인 농장주의 아들 루퍼스와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당시는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 인권과 복지는커녕 흑인들은 비참한 노예의 삶을 살며 가혹한 처벌은 물론 가족과 떨어져 가축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기도 한다.

 

다나의 시간여행에는 두 가지의 규칙이 있다. 루퍼스가 죽을 위기에 처할 경우, 20세기의 다나가 현기증을 느낌과 동시에 과거로 오게 되며 반대로 다나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다시 현재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장치를 통해 저자는 다나의 여러 내, 외적 갈등을 보여준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는 조상인 루퍼스가 무사해야 한다는 강박과 동시에 농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흑인들과의 유대감 사이에서의 갈등, 백인이자 동시에 남성인 케빈과의 관점 차이에서 오는 갈등, 그리고 루퍼스와의 애증 관계 등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장면이 없다.

 

타임슬립이라는, 어찌 보면 SF라는 장르 내에서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19세기 미국을 통해 인종갈등, 노예제도, 성별 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의 속성, 인간의 주체성, 그리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의 문제까지도 저자는 독자들에게 쉼 없이 질문을 던진다. 1800년대 노예제 미국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몰입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보통 저자가 소설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할수록 소설 자체는 빈틈이 많은 경우가 다수인 데 반해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재미있다. 다채로운 갈등에서 나오는 속도감과 긴장감이 상당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SF 장르에 편견(우주라든지, 외계인이라든지...)을 지니고 있다면 오히려 더 색다르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괜히 SF 추천 도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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