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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평점 :
바다를 떠난 적 없는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
배 위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육지를 밟지 않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피아니스트 대니 부드먼 T.D. 레몬 노베첸토. 그의 고향이자 집, 모든 것은 물 위의 작은 도시 빅토리아호였다. 국가나 도시 등 육지의 그 어떤 것도 노베첸토를 정의할 수 없었고 그 또한 육지에 ‘존재한 적 없는’ 음악과 함께 살아갔다.
배를 탄 사람들은 노베첸토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음악에 이끌려 일등칸 승객이 삼등칸에 머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음악에는 발도 국경도 없었다. 노베첸토의 음악은 결국 육지에까지 알려져 당대 최고의 연주가이자 ‘재즈의 창시자’ 젤리 롤 모턴이 경합을 위해 빅토리아호에 승선하기도 한다.
이후 노베첸토는 갈등한다. 배에서 내려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와 무한한 육지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충돌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다. 노베첸토가 바라본 육지는 무서울 정도로 광활했기에 2000명의 유한한 삶이 존재하는 빅토리아호를 떠나지 못한다.
‘피아노를 생각해봐. 건반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 우리 모두 그게 88개라는 걸 알지. 건반은 무한한 게 아니야. 당신, 당신은 무한하고 그 건반들 속에서 무한한 것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음악이야. 건반은 88개이고 당신은 무한해. 만약 내가 그 사다리 계단에 오른다면 내 앞에 수백만 개의 건반이 펼쳐지겠지. 건반이 무한하다는 건, 그건 그 건반 위에서 당신이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은 없다는 거야. 피아노를 잘못 선택한 거야.’
노베첸토가 빅토리아호였고 빅토리아호가 노베첸토였다. 어느 날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빅토리아호에 폭파 명령이 내려졌을 때 노베첸토는 여전히 그 배에 있었다.
음악을 다룬 이야기를 글로 접했을 때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작품에서 나오는 음악을 직접 내 귀로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며 보통은 곡명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가능하다. 노베첸토의 음악은 그럴 수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그의 음악은 오직 바다에 떠 있는 빅토리아호에서만 흘러나온다. 들어보지도 못했고 들을 수도 없는 피아노 소리를 감히 상상해본다.
바다 위, 한 피아니스트의 삶을 그린 모놀로그다. 연극을 위한 글이기에 리듬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책은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원작이라고 한다. 소설의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