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
필립 한든 지음, 김철호 옮김 / 김영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특이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여행자들의 소지품 목록을 짧은 설명과 곁들여 나열했다. 어찌 보면 시와 같은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여행과 그에 필요한 소지품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루겠거니 했지만, 제목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었다.

 

41명의 여행자와 그들의 여행 소지품을 다룬다(사실 40명과 한 마리다). 처음 접해보는 낯선 여행자도 있고 마르셀 뒤샹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익숙한 이름도 종종 보인다. 반지의 제왕의 빌보 배긴스’, 소설 모비 딕의 화자 이스마엘처럼 허구의 인물도 자유로운 여행자로서 이 책에 등장한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한 마리북극제비갈매기 또한 책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35,000km 대장정에 나선 갈매기의 소지품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물론 북극제비갈매기에게 소지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가볍게 떠나기에 가장 부합하는 여행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는 주제와 구성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각 여행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들의 소지품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반복적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초반에는 흥미롭게 책장을 넘겨 나갔으나 점점 피로를 느끼고 심드렁하게 텍스트만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1회독을 마친 뒤 이건 아니지 싶어 책을 한 번 더 펼쳤다. 그리고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었다. 소지품, 즉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 물질의 획득이 곧 기쁨인 지금,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얻을 수 있는 모순적인 기쁨을 생각해볼 기회였다. 셔츠 두 벌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칫솔 하나만을 지닌 채 주말마다 여행을 떠났던 뒤샹처럼 가볍게 떠나기를 언젠가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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