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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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략경영론 수업시간에 언급된 책. 교수님은 기존 경영 윤리 분야의 연구가 추상적이고 당위론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비판과 함께 그 대안으로 괴짜 사회학의 저자 수디르 벤카테시 교수의 접근방법을 제안하셨다. 그날 수업한 44페이지의 ppt 슬라이드 중 단 한 페이지만을 차지하고 있었고 많은 시간을 들여 설명한 내용도 아니었지만, 꽤 깊은 인상을 받았다. 원래도 강연이나 수업에서 책이 언급되면 주제를 불문하고 찾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별다른 검색 없이도 읽어보고 싶은 맘이 강하게 들었다.

 

시카고 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저자는 흑인 빈민가의 삶에 호기심을 느낀다. 당시 주류 사회학계는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통계적 분석을 중시했다. 하지만 시카고의 역동적인 삶에 푹 빠진 열정 넘치는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답을 듣는 접근방법을 택한다.

 

설문지와 필기장을 들고 공영주택 로버트 테일러 홈스를 방문한 날, 코카인을 거래하는 갱단 블랙 킹스의 간부 제이티를 만난다. 대학을 다녔던 제이티는 저자의 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질문을 던진다.

 

왜 연구원들은 네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선다형 설문지를 쓰냐?”

왜 그들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거냐?”

얼간이 같은 질문이나 하면서 돌아다녀선 안 돼.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왜 그러는지 알아야 해. 젊은 청년들이 왜 거리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제이티의 질문에 저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과 함께 저자의 10년에 걸친 빈민가 생활이 시작된다. 제이티와 주민들의 협조 아래 공영주택 사회 내의 많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진짜 삶을 연구한다.

 

수시로 갱단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고 마약 거래와 매춘이 일상인 지역이지만, 경찰과 구급차는 오지 않는다. 공권력과 사회보장제도에 외면받은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치안을 유지하는 건 다름 아닌 제이티가 속한 갱단 블랙 킹스. 무법자이자 동시에 입법자인 이들은 나름의 체계로 지역과 사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회학 관련 책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떠한 통계적, 수치적 내용도 담겨 있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책을 이끌어갔다. 마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흥미로운 내용이기도 했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 10년의 시간을 하나의 연구에 쏟아부은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기도...

 

후에 로버트 테일러 홈스는 시카고 도시정책의 일환으로 철거되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보상은커녕 더 낙후된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난한 삶을 이어나갔다. 기존 사회학의 뜬구름 잡는 빈민 해결 정책은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수디르 벤카테시 교수의 사례와 같은 현장에서의 연구가 보다 축적된다면 현실성 있는 진보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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