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얼마 전에 쇼미더머니 6가 시작됐다. 엠넷에서는 프로그램의 흥행을 위해 여러 밑밥을 까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방영했던 쇼미더머니 5의 여러 방송 클립들을 반복적으로 방영했다. 그 중에서는 화제가 되었던 보이비의 '호랑나비'라는 노래의 공연 영상도 있었다. 공연에는 여성 댄서들이 출연했는데, 알고보니 '우주소녀'라는 걸그룹이었다. '우주소녀'는 나름대로 알려진 상태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만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우주소녀'는 저 방송을 통해 불멸의 영역에 들어선게 아닐까. '우주소녀'라는 이름을 가진 걸그룹이 소멸되어도, 쇼미더머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영상을 찾아볼 것이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됨에 따라 '불멸의 영역'에 들어선게 아닐까.
불멸이라는 단어는 2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재는 '생물학적'불멸이다. 말 그대로 오래사는 것, 정확히는 멸하지 않는 것, 죽지 않는 것이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생물학적 불멸을 꿈꾼 대표적인 인물이다. 요즘 시대가 되서는 오래 건강하게 사는 걸 목표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만, 영원히 멸하지 않는 것을 꿈꾸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조부모에게 '오래 살고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하면, 그 말에도 인간은 '필히 멸한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필히 멸할 운명이기에, 그 운명을 연장하는 것이 순수한 어린 아이의 소망인 것이다. 이 처럼 인간이 무조건 죽는다는 사실은 외면할 순 있어도, 피할 순 없다. 그래서 인간은 생물학적 '불멸'보다는 두 번째 의미의 '불멸'에 집착한다. 좁게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 넓게는 역사에 나믄 것을 '불멸'이라고 칭한다. 진시황은 생물학적 '불멸'을 이루진 못했지만, 불멸을 향해 나아가는 무모함이 진정한 '불멸'에 이러서게 되었다. 물론 그는 생물학적 불멸을 더 원했을지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은 '불멸'의 영엑 드러서기 위한 몸짓을 표출하는 존재를 다룬 소설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등의 고전을 남긴 독일 작가, '쾨테'라는 남자가 존재한다. 이미 62살이 된 그는 불멸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그의 명성은 전세계에 퍼져있다. 이제 그에게 불멸에 들어서기 위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그의 '죽음'이다. 불멸의 조건은 모순적으로 죽음이다. 우리가 천재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천재이기에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인지, 젊은 나이에 죽었기에 천재라고 불리는 것인지. 살아 있는 사람에겐 쉽사리 '천재'라는 칭호를 부르기엔 망설여진다. 불멸의 문 앞에 드러선 괴테 앞에 26살의 아름다운 여성, 베티나가 나타난다. 베티나는 끊임없이 괴테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괴테에겐 이미 세월을 함께한 아내 크리스테나가 있었지만, 베티나는 누가나 반할만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괴테'는 곧 불멸의 존재가 될 운명이었고, 괴테는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불멸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지는 고착화된다. 역사 속의 인물을 생각해본다. '이순신, '히틀러' 이런 류의 인둘은 불멸이 되는 순간, 개성은 사라지고, 역사 속의 단편적 모습만 우리의 머리 속에 남는다.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에 의해 이미지를 선택받는다.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면모와 다른 부분이 존재하지만, 어떤 모습의 극히 '일부분'만이 불멸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다. 괴테는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쉽사리 행동할 수 없었다. 어떤 모습이 불멸의 영역에 남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게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젊은 여자와의 치정, 혹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불멸로 남기에 유리한 이야기이다. 그러한 이유로 괴테는 스스로를 절제했다. 불멸에 남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베티나는 육체적인 몸짓으로, 말로서, 편지로서, 끊임없이 사랑을 말한다. 하지만 베티나의 몸짓은 괴테를 향한 순수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아니다. 베티나는 영특한 여자였다. 그녀 또한 불멸의 영역에 관심이 있었다. 괴테가 '불멸'의 영역 가까운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괴테를 사랑한 것이다. 괴테의 죽음이 멀었거나, 그가 유명하지 않았다면, 그가 불멸의 존재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면, 괴테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괴테는 결국 나이가 들어 죽었다. 괴테는 살아생전에는 베티나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죽음 이후엔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베티나는 괴테가 죽은 후에, 괴테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책으로 출판했다. 그 편지들에는 괴테를 향한 베티나의 사랑이 담겨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베티나는 말을 했다. 게다가 편지들의 내용을 조금 씩 바꿨다. 괴테와 함께, 베티나도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괴테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베티나는 괴테의 영원한 연인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불멸을 향한 몸짓은 역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계승된다. 베티나 이후, 수 백년이 흐른 현대에 와서는 '로라'라는 여자가 존재한다. 로라는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슬픈 일이 있으면 일부러 눈에 띄는 거대한 까만 선글라스를 낀다. 그녀의 말, 행동은 실질적인 그녀의 상태를 말해주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고 싶은 그녀의 모습을 말한다. 그런 맥락에서 '베티나'와 '로라'는 비슷하다. '로라'는 남자 친구 베르메르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로라에게 중요한 것은 이별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 특히 형부 '폴'에게 이별당한 자신의 모습을 비참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눈 앞에 권총이 보인다느니,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죽겠다니와 같은 말로 '폴'을 흔든다. 끝내 폴은 아내인 아녜스와 헤어지고, '로라'와 사귀게 된다. 이를 이룬건 로라의 불멸에 대한 욕구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려는 욕구
밀란 쿤데라가 소설 '불멸'에 담으려는 모습은 그런 모습인 것 같다. 한 소설가, 한 작가를 잘 알기 위해서는 여러 저작을 읽는 것이 가장 정석적인 법이다. 글은 사유의 표상이다. 그리고 글의 사유는 반복된다.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와 노년기에 드러선 마르크스의 글의 사상은 분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역사적 흐름에 따른 변화이다.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연구하는 과정, 그의 사유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으로 보자면, 마르크스의 그들의 사유, 공산당 선언, 자본론, 경제학 논고, 독일 이데올로기, 등의 저작들의 사유는 동일하다. 한 인간의 사유는 깊고 얕음이 있을 뿐이지, 기본적으로 하나의 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밀란쿤데라도 마찬가지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마찬가지로 '불멸'에서도 하나의 강력한 기준, 이 소설에서는 '불멸'이 되겠다, 에 대해 말한다. 하나의 강력한 기준 앞에서 인간의 다양한 군상이 의미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멸에 도달하면, 그 존재는 행복의 불멸에 도달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쿤데라는 저승에서 괴테와 헤밍웨이가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답을 한다. 불멸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괴테는 불멸을 신경쓴 탓에 마음대로 살지 못한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불멸을 향한 무의식적 움직임일지 모른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모습, 유명세를 얻어 행복하려는 모습,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모습, 이런 모습의 근원은 불멸인 듯 보인다. 하지만 불멸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불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들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글머 우리는 무엇을 근원으로 살아가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