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신상정보를 적을 것을 누가 요구하면 난 아무말 없이 얌전히 다음과 같이 써 준다.
이름 : 이건 정확히 쓴다.
성별 : 이것도 정확히 쓴다.
생년월일 : 주민번호를 참조 하라고 쓴다.
주민번호 : 앞 6자리 -> 오늘 날자. 년도는 맘내키는 대로, 뒷 7자리 -> 이미 고인이 된 사촌꺼
주소 : 신상정보를 요구한 기관혹은 업체의 주소. 한동안은 평양이라고 썼음
전화번호 : 신상정보를 요구한 기관혹은 업체의 전화번호
2.
내 주민번호는 새 주민증이 나오면서 바뀌었다.
번호가 틀리다고 그러니까 동직원이 이게 맞는 거란다.
뒤에 줄선 사람이 많아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거니 하고 왔다.
나 같이 주민번호가 졸지에 바뀐 사람이 수십만명이 된다고 한다.
대부분이 초기에 원부를 수기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오기라 한다.
쪽수만 믿고 정부가 어떻게든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신경 끊었다.
3.
회사 인사과 과장이 몇푼 더 받게 해 줄테니까 학위증명서를 갖고 오란다.
이것때문에 내가 학교까지 갔다 와야 되냐고 하니까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발급되니 걱정 마시란다.
나의 도움으로 인사과 여직원이 졸업하고 한번도 근처에 가 본일 없는 학교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졸업년도를 대란다.
기억이 안나 멍하니 있으니 이번에는 주민번호를 대란다.
갑자기 물으니 그것도 기억이 안나 여전히 멍하니 있으니 여직원이 대신 입력한다.
그녀가 어떻게 내 번호를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졸업생이 아니라는 메세지가 나온다.
당연히 그렇겠지.
새 주민번호가 나오기 훨씬 전에 졸업했으니까 말이다.
주르르 이전 번호를 대니 이번에는 틀린 번호란다. 번호 조합규칙에 어긋난다며 아에 DB 조회조차 안하는 모양이다.
이제 어떻게 하라고?
4.
위기의식에 상전벽해가 된 학교를 찾아갔다.
동일 상황의 반복이다.
새 번호를 입력하면 그런 인간이 이 학교에 다닌적이 없다. 그러고
헌 번호를 입력하면 바쁜데 이 딴 장난질이냐. 그런다
높은신분을 찾아 갔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안면있는 양반이 사무처장실에 앉아 있다.
날 용케 알아보고 거대 엉덩짝을 뺑뺑이 안락의자서 들어 올리기 까지 한다.
이러 저러 황당한 일을 당하여 찾아 왔노라 하니 여기 저기 전화하며 부산을 떤다.
이전 학적부를 모두 전산처리하여 DB로 만들고 종이 원부는 지방에 있는 모 문서보관 전문 창고 업체에게 외주 처리 하였단다.
고로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하니 행정소송이라도 해보는게 어떻냐는 더 황당한 해명을 뒤로 하고 돌아왔다.
내가 정말 대학원(덤으로 대학까지)을 나왔는지 내 기억을 의심해야 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
5.
고등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동기회장에 강제로 임명됐단다.
동창회 홈페이지에 동창명부를 만들겠다는 한심한 나름 원대한 구상을 하고 학교에 가서 명부를 PDF로 받아 왔단다.
명문 돈많은 재단의 중고등학교 역시 학적부 DB화에 돈을 발라 (그 돈으로 장학금 줄 생각은 전혀 안해봤을까?) 전부 전산화 되어 있단다.
내 이름이 그 PDF 파일에 없단다.
혹시 자기가 내 이름을 잘 못 알고 있는게 아닌가 하여 전화했단다.
인제 안봐도 뻔하다.
DB 입력하는 외주회사의 프로그램에 내 구번호가 입력오류로 걸렸을 것이고 두둘기던 언니야는 내 파일을 빼 내동댕이친 다음
계속 자기일을 열심히 했을것이다.
6.
근래 고향 옛친구와 통화중 내가 국민학교를 못 나왔다는 설이 있으니 학교가서 졸업증명서 하나 떼서 보내라 그랬다.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는 옛친구, 한 일주일 뒤 팩스로 먼가 보내왔다.
인쇄된 양식에다 이름, 입학년도,졸업년도, 본적만을 손으로 채우고 커다란 교장직인을 꽝 찍은 증명서.
거기에 주민번호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국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