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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한 차례 치러졌다. 오랫동안 집안일은 사랑이나 의무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사노동 또한 '노동'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청소와 요리, 육아에 투입되는 시간을 계량하고 가시화하는 연구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노동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책은 시간을 기준으로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다른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바로 계획하고, 예측하고, 결정하며 가정을 운영하는 '머릿속 노동'이다.
그렇다면 왜 집안일을 분담하는데도 한 사람만 유독 더 지치고 피곤하다고 느낄까. 설거지는 반반 하고, 청소도 번갈아 하는데도 왜 누군가는 늘 머릿속이 바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인지노동에서 찾는다. 인지노동이란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측하고,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며,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끝까지 확인하는 일련의 사고 과정을 의미한다. 집안일을 '실행하는 사람'과 집안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가정에서 후자의 역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점을 포착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커플들을 인터뷰하며 인지노동이 실제 가정에서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커플들조차,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예측하며 결정하는 머릿속의 노동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불균형은 흔히 "내가 원래 꼼꼼해서", "상대가 원래 무던해서"라는 말로 설명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개인의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불평등을 성격의 차이로 환원하는 '성격 본질주의'라는 사고방식으로 분석한다. 즉, 성별에 따라 형성된 역할과 훈련의 결과를 타고난 기질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순간, 인지노동의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굳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모든 가사와 돌봄을 기계적으로 50:50으로 나누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실행'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예측하며 결정하는 권한과 책임까지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쓰레기를 버려 달라", "장을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여전히 한 사람이 전체를 기획하고 있다는 의미다. 진정한 재배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알아차리고, 일정을 관리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과정 자체를 함께 맡는 것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처음부터 효율적일 수 없다. 상대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도 감수해야 한다. 저자는 바로 그 '통제 내려놓기'가 인지노동을 재배분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공평하다고 믿었던 가사 분담이 반드시 평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은 나누고 있었지만, 그 일을 계획하고 기억하고 책임지는 머릿속의 노동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막연히 느끼기만 했던 불균형에 '인지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동안 설명하기 어려웠던 불평등함을 가시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