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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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선거공약과 떠들썩한 선거유세는 투표 당일이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수그러든다. 마치 단기 이벤트가 치뤄진 것처럼. 유세의 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늘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현재의 정치는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이 무거운 질문의 블랙박스가 되어줄 책이 바로 이창곤의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다.

선거가 끝나도 시민들의 삶은 매일 이어진다. 그리고 정책은 시민들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때로는 평범한 시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들이 불쑥 등장하곤 한다. 뒤늦게 비판 여론에 밀려 사과와 함께 철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허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시민의 상식과 이토록 괴리되어 있다면, 과연 그들이 우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장의 목소리와 동떨어진 탁상공론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황당함과 무력감의 근원을 이 책은 정면으로 파고든다.

책은 한국 정당 정치가 마주한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의 정당은 이념과 정책 경쟁보다 선거 승리에 집중하는 ‘포괄 정당’의 성격이 강해졌고, 그 결과 시민의 요구를 반영할 정책 논의의 장은 점차 약화되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정책 의제를 장기적으로 고민하기보다 선거 주기에 맞춰 급조된 공약들이 국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장훈 교수가 한국의 정책 정당을 두고 “밤하늘의 북극성과 같다”고 표현한 대목은 이러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특히 정치인들 스스로 정책 역량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채 관료 조직과 사적 캠프에 의존하는 구조, 그리고 입법보다 시행령에 기대는 ‘시행령 정치’가 반복되는 현실을 정책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황당한 정책들은 개인의 실수보다 이러한 구조적 결함 속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실패를 멈추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먼저 선거만으로 시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는 통념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투표만으로는 정치 구조를 바꾸기 어렵고, 시민의 참여는 선거일 하루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전 과정을 꾸준히 감시하고 평가하는 시민적 참여가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저자는 시민 참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도 지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선거 중심의 정치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 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만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들은 방향성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정책 정당의 육성, 권력 구조 개편, 시민 참여 확대 모두 중요한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를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경로는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제시된다. 특히 해법의 상당 부분이 정치권의 의지와 제도 개혁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실제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는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기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정치 구조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저자가 지향하는 종착지는 명확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책은 정부와 국회, 사법부 같은 제도권 권력과 정치인, 교수 등 일부 엘리트 집단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주변부에서 이를 견제해 왔지만, 정작 시민은 완성된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를 넘어 모든 주체가 상호 소통하고 견제하는 유기적인 ‘정책 생태계’의 구축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격렬한 소수의 독재를 넘어, 침묵하는 다수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낼 것”이라고 표현한다.

책은 단순하게 정책 실패의 사례를 나열하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의 문제를 추적하고, 시민이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선거가 끝난 다음 날에도 왜 우리가 정치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민주주의가 투표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시의적절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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