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퇴근길 지하철에서 쏟아지는 타인의 통화 소리, 거리를 가득 메운 외침 사이에 개인의 목소리는 파묻힌다. 속삭이는 소리가 아닌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외침은 왠지 모르게 소음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자연스레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보다 고성을 지르며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는 큰 목소리의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곤 한다. 그 소음에 매몰된 개개인의 목소리는 자연스레 '나쁜 무리'에 스며든다. 예소연의 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의 구멍을 안고 살아간다. 이 구멍은 혼자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작가는 이 결핍의 구멍을 억지로 메우려 들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을 ‘무리’로 묶어 세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무리가 완전하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의 통념이나 보편적인 선의 기준에서 비켜난, 이른바 ‘나쁜 무리’들의 결속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오염되기 쉽고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운 존재이기에 이 모든 연대가 가능하다고. 설령 그것이 나쁜 무리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말하는 것도, 생각을 바꾸는 것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우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무리'라는 단어에 붙은 '나쁜'이라는 형용사이다. 겉으로 보기에 나쁘지 않고 오히려 보통의 무리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기준에서는 나쁘다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품 속 '소란한 속삭임' 모임이 사실 사이비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고, 그 규칙을 들으며 더욱 거부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거부감이 나의 오만한 편견이었음을 꾸짖듯 나의 인식을 뒤흔들며 다른 전개를 이어간다. 그리곤 도덕적 잣대 대신 인물들의 내면 깊숙한 곳을 파고들며 거창한 구원이나 종교적 서사를 배제한다. 서로의 발밑에 놓인 사소한 진실들에만 집중하며 개인의 이야기는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다. 타인의 슬픔과 맞물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작가의 문장은 때로 "살고 싶은 것과 죽고 싶지 않은 것은 다르다"라는 고백처럼 서늘하고, 때로는 "우리는 우리가 구제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처럼 뜨거운 온도를 가지고 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온도 차가 극명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설계한 거대한 '결핍의 지도' 위에 서게 된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 있던 슬픔이 아주 우연히 교차하며 '나쁜 무리'라는 공동체가 뒤섞인다. 혼자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결핍의 구멍들을 서로의 슬픔으로 채우며, 그들은 기어이 '나쁜 무리'로 남는다. 시끄러운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그 '나쁜 연대'는 그들을 살게 하는 마지막 숨구멍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