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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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만드는 각본과 연출은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그곳에는 피해자가 없었음에도 가해자를 위해 작품이 존재했다. 이 기이한 연극의 시작은 경건한 예배당에서 시작된다. 성령에 젖어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여자와 그 눈물에 매료된 평범한 우체부가 만난다. 이들의 만남은 운명적인 로맨스로 끝맺을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선명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흐려지는지를 한 남자의 시선으로 조용히 증명한다. 선의와 욕망이 뒤섞일 때, 인간은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조차 잊는다. 이 작품이 불편한 이유는 주인공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만큼이나 평범해서이다.

평범함은 결백의 증거가 아니다. 루틴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부모님과 저녁을 먹는 삶이 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이 공모자가 되는 과정은 극적이지 않아 더욱 무섭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했지만 그것을 몰랐기에 익숙해졌고 그 결과물은 즐기게 만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악의 축이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아우슈비츠 담장 밖의 평온한 일상을 통해 보여주었던 '악의 평범성'처럼, 이 작품 역시 악이 특별한 괴물의 자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인다. 처음엔 그녀를 위해서, 다음엔 우리를 위해서, 마지막으로는 나를 위해서 라는 무수한 이유를 붙여 정당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 아름다운 포장지는 물에 젖은 양심을 감추기엔 부족했다. 그 안에는 외면한 죄책감과 자신이 송두리째 뚫릴 만큼 폭력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39페이지의 “이젠 사랑따윈 안중에도 없다. 부질없는 감정 따위는 의미가 없다.” 라는 서늘한 말은 자신의 불행을 무기 삼아 타인의 불행을 식탁 위에 올린 공허였다. 불행을 먹고 남은 곳엔 또 다른 불행의 배설물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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