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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요떠요 할머니 ㅣ 특서 어린이문학 15
오미경 지음, 김다정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2월
평점 :
마치 인어공주처럼 입을 닫아버린 아홉 살 단풍이. 단풍이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어쩐지 주변의 소란은 커져만 간다. 단풍이의 목소리를 대신해주며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장미와, 단풍이에게 마법을 건 마녀를 찾아 목소리를 되찾아주겠다고 결심한 재윤. 아이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학교 앞 수상한 뜨개방, ‘떠요떠요 할머니’에게로 향한다.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가게와 알록달록한 주머니를 찬 할머니는 정말 단풍이의 목소리를 훔쳐 간 마녀일까?
하지만 단풍이의 침묵에는 마법이 아닌 현실의 상처가 원인이었다.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찰나가 있다. 아홉 살 단풍이가 입을 닫아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커다란 용기를 내어 던진 다정한 진심은 친구들의 꺄르르 거리는 웃음소리에 먹혀 감당하기 어려운 '부끄러움'이 된다. 한순간의 용기가 비웃음으로 거대한 부담감으로 변했고 단풍이는 안전한 침묵 속으로 숨어버렸다.
할머니를 마녀로 의심하며 벌이는 아이들의 엉뚱한 시험과 소동은 역설적으로 단풍이의 닫힌 세계에 균열을 낸다. 용기도 한순간이고 부담감도 한순간이지만, 단풍이는 그 찰나를 통과해야만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부끄러운 찰나를 뚫고 다시 입을 열게 된 건 아주 단순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투박한 주문과 친구들의 서툰 진심이 단풍이의 '용기'를 깨워준 것이었다. “수리수리 마수리, 까지거 까지거!".
세상의 모든 ‘오단풍’에게는 타인의 시선을 털어내고 한 발 내딛는 ‘배짱의 용기’를, 그 곁의 어른들에게는 아이의 닫힌 입술이 다시 달싹일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기다림의 용기’를 건넨다. 문득, 우리 집 근처에도 ‘떠요떠요 할머니’가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이 잔뜩 엉킨 날, 할머니를 찾아가면 용기를 불어넣어 줄 주문 하나쯤은 툭 건네주시지 않을까. "수리수리 마수리, 마음아 펴져라! '주머니 쏙 용기, 입술 끝 톡 진심!" 같은거? 움츠러들었던 오늘이 마법처럼 흐릿해지고, 다시 내일을 향해 입술을 뗄 수 있게 만드는 할머니의 뜨개방. 그 다정한 공간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씩 생겨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