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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관 ㅣ TURN 10
유진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살인을 저지른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살인을 한 순간 그의 육신은 피해자의 것이 된다. 이 시스템의 시작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피해자를 위해서 라는 명목에서 시작되었다. 사법 정의가 무너진 시대에 대중이 갈구하는 '가장 완벽한 인과응보 시스템'의 등장이었다. 가해자의 인권이 피해자의 고통을 압도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신을 대신해 '전환'이라는 기술로 피해자가 부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간은 그런 부조리함에 해결책을 찾으려 했고, 죄를 심판하는 신과 사후세계를 만들어냈다(269p)의 결과물이 '전환 기관'이었다.
전환자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만큼 수사는 완전무결해야 한다. 한 사람의 숨을 끊고 다른 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이 시스템에서 수사는 사실 확인 뿐만 아니라 형의 집행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수사관 주승우가 직면한 압박은 271p 욕망과 거짓의 진창 속에서 진실을 꺼내고 최상의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의 형벌이라 할지 모를 이 절대적인 권한 앞에서 수사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성역이어야 했다. '전환형'이라는 형벌로 범죄율은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심판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법 기제에도 틈은 있었다. 그 균열은 '판단의 기준'에서 시작되었다. 피해자가 여러명일 경우 어떤 사람을 살려야 하냐는 것이다. 의사에게는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라는 명확한 의학적 지표가 존재하지만,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쥔 재판관에게는 그런 절대적 기준이 부재했다. 그래서 재산, 나이, 성별, 그리고 가족 관계 그 어떤 것에도 생명의 우선 순위를 매기기 어려워 법정은 딜레마에 봉착한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나이가 젊다고 해서, 혹은 부양할 가족이 많다고 해서 그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전환'받아야 마땅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기준의 부재는 가장 추악한 방식의 여론 재판을 불러왔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조회수에 눈이 먼 가짜뉴스 유포자들은 피해자 유족들의 지극히 사적인 정보까지 유출했다. 대중은 이에 동조했고 유족들은 서로 비방하게 만들었다. 누구를 살릴 것인가의 논의가 아니라 누가 더 죽어마땅한가를 따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100p 전환과 전환형이 모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시스템이 약속했던 '완벽한 정의'와는 거리가 먼 저열한 방식이 펼쳐진 것이다. 죽은 자를 불러오기 위해 산 자를 괴물로 만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동력은 '완전무결함'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인간의 의지에 있다. 거대한 기계 장치의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진흙탕 속에서도 진실의 원형을 보존하려 했던 주승우 같은 이들의 분투가 있었기에 이 세계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마무리가 불완전하면서도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시스템의 승리가 아닌 인간의 고백에서부터였다. 또한, 진실 앞에 마주 선 개인의 양보와 용기를 통해 기계적인 전환보다 인간적인 회복에 주목하게 된다. 모든 것이 환상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진실을 바로잡으려는 정직함에 의해 '진실'이라는 올바른 선택지로 인도한다. 진실을 감당하려는 인간의 정직함과 용기는 현 시대에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