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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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 사회의 젠더 이슈를 '도깨비 도로'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도깨비 도로는 실제로는 명백한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지형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로 인해 오히려 오르막길처럼 보이는 기이한 구간이다.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이와 같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이 엄존하는 '내리막길'의 현실 속에서도, 사회는 교묘한 착시를 일으켜 도리어 '남성 역차별'이라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고 굳게 믿어버린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사실과 통계마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이 시대에, 책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은 이 거대한 왜곡의 근원과 일상화된 폭력의 민낯을 매우 집요하고 날카롭게 파헤친다.


가장 참담한 대목은 '혐오'가 어떻게 정치인에게 '기회'이자 손쉬운 '선거전략'으로 전락했는가를 짚어내는 지점이다. 정치권은 무한 경쟁과 줄 세우기만이 공정이라는 '그릇된 공정 감각'을 자극하며, 평등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위선자로 몰아붙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도 재생산된다. 배우 양자경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들이여(And ladies),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고 남긴 묵직한 수상 소감에서, 국내 한 방송사가 고의로 'And ladies'라는 핵심 주어를 삭제하고 보도한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취와 연대의 목소리를 얼마나 교묘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지워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촌극이자, 여전히 굳건한 유리천장의 단면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언급되는 <소년의 시간>의 문제의식처럼, 십 대 남성 청소년들이 이른바 '인셀(Incel, 비자발적 독신주의자)' 문화에 빠져드는 현상은 이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징후가 되었다. 올바른 젠더 인식이 형성되기도 전에 또래 문화와 온라인 하위문화를 통해 혐오를 일종의 '유희'로 먼저 학습하는 소년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N번방이나 딥페이크 성착취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피해자들이 문란해서"라는 왜곡된 성인식으로 가해를 정당화한다. 책은 이들이 '왜 끔찍한 폭력에 가담했는가'라는 결과론적 심판에 머물지 않는다. 이 소년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며 무엇을 보고 배우는지, 혐오를 오락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을 되묻는다.


저자는 남성들이 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가부장제로부터의 탈피'를 든다. 현재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했던 어머니 세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주체적인 삶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남성들에게 '결혼'을 통해 남편이자 아빠가 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능력과 정상성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로 남아있다. 미디어에서 미혼 남성을 한없이 짠하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는 반면, 흠결 있는 기혼 남성의 모습을 향해서는 "저런 놈도 결혼을 하는데" 라며 끊임없이 비교하는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남성들이 가부장적 역할 모델에 얼마나 강박적으로 얽매여 있는지를 방증한다. 이 모순적인 시선들은 결국 남성들 스스로가 가부장제라는 낡은 틀 안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예리한 진단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현실적인 제언을 덧붙이고 싶다. 책은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젠더 이슈를 악용하는 비논리적인 혐오 프레임임을 정확히 짚어내며, 여성 경찰이 성폭력 피해자 등에게 제공하는 정서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의 가치를 부각한다. 혐오의 무기가 된 이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 부당한 프레임을 더욱 근본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여성 경찰의 역할을 '피해자 정서 지원'의 영역에만 머물게 두어선 안된다. 체력 검사 기준을 현실의 치안 수요에 맞게 강화하고 그에 맞는 전문 훈련 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결코 여경 무용론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경찰이 현장에서 '물리적 치안 유지'와 '피해자 지원'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는 주체로 우뚝 서게 함으로써, 혐오 세력의 논리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주체적인 타파 전략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이 지닌 명확한 한계점 역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남성들 스스로 가부장제를 타파하고 진정한 성평등의 길로 나아가게끔 설득하는 데 있다면, 책 전반에 흐르는 다소 공격적인 어조와 도발적인 제목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은 아쉬움을 남긴다. 혐오의 민낯을 직설적으로 고발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러한 날 선 태도는 오히려 변화가 가장 필요한 남성 독자들에게 거부감과 방어기제를 일으킬 우려가 크다. 자칫하면 젠더 이슈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고 이미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끼리만 환호하게 만드는 '확장성의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저자는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흠결 있는 누군가를 찾아내어 재단하고 '심판'하는 데 몰두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곁을 지키는 연대'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억압하기 위한 사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할 용기를 불어넣고 일상의 폭력 속에서 숨 쉴 수 있게 만드는 '숨구멍'이라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모델은 매우 구체적이고 희망적이다. 그것은 가족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청년 남성이 더 이상 원치 않는 가부장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짊어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부양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연대와 상호 돌봄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 남성들에게 얄팍한 특혜를 쥐여주며 달래는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로운 평등한 구조로 나아가는 것이 결국 남성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다. 저자는 무너져가는 가부장제의 폐허 위에서 우리가 쟁취해야 할 진정한 승리는, 차별을 훔치는 비겁함을 멈추고 서로를 돌보는 단단한 연대의 자리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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