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넘은 새 특서 어린이문학 14
손현주 지음, 함주해 그림 / 특서주니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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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서서히 좁아지고, 그 자리에 고층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유리새의 둥지는 조금씩 숲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자리에서 유리새는 살아간다. 이 동화의 시작은 인간의 일방적인 도시 확장에서 비롯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긴다. 우리는 과연 ‘공존’이라는 말을 얼마나 가볍게 사용해 왔는가.


공존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 앞에서는 그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렵다. 여기서 공존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누군가를 밀어낸 뒤에야 내미는 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리새는 숲이 사라지는 동안 끊임없이 외곽으로 밀려났고, 다른 새들이 떠나는 사이 홀로 남았다.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둥지를 잃고도 그 자리에 남아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곧 태어날 생명 때문이었다.


유리새는 까치와 까마귀의 위협 속에서 겨우 둥지를 지켜내고 아기 새들을 키운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몸에 묻은 잿빛 먼지는 결국 아기 새들조차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감내한 도시의 때묻음은 아이를 위협하는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보호를 위해 감수한 희생이 오해를 불러온 것이다.


까마귀와의 대화 역시 공존이라기보다는 타협에 가깝다. 살아남기 위해 까마귀 앞에 나선 용기와 그 대가로 감당해야 했던 위험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유리새는 끝까지 둥지를 지켜내고, 아기 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잘 살아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와 공존하지 못한 존재, 끝내 타협하지 못한 유리새는 목숨을 잃는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비극을 과장하지 않는다. 유리새의 죽음은 숭고하게 미화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다.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이 동화를 읽다 보면 ‘유리새’라는 이름이 왜 유리새인지 알게 된다. 도시는 투명한 유리창으로 가득하지만 그 투명함은 새들에게 결코 안전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새들처럼, 유리새 역시 인간이 만든 구조물 앞에서 끝없이 위험에 노출된다. 인간에게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이지만, 다른 생명에게는 치명적인 함정이 되는 공간. 이 동화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레 겹쳐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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