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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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골든베르크 변주곡, 글렌 굴드의 음악을 들으며 출근한다고 말한다. 매일 비슷하게 열리고 비슷하게 닫히는 하루 속에서 음악은 유독 시간을 의식하게 만든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며, 우리는 반복과 변주를 거듭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위에 음악을 포개며 시작된다.


존재하는 것들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맞물려 있고, 우리는 타인의 삶을 경유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세상을 비관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은 흐르고 기억은 옅어진다. 그러나 흐릿해진 기억의 틈으로 어떤 음들은 다시 스며든다. 이 책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노래를 끼워 넣으며, 사라진 감정과 잊었다고 여겼던 밤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읽는다는 행위는 어느새 듣는 일이 되고, 독자는 오래된 음의 밤 속을 천천히 걷게 된다.


저자가 곱씹는 것은 우리 앞에 이미 와 있는 오래된 슬픔이다. 이 책이 말하는 삶은 기대하지 않는 삶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에 가깝다. 다소 밀도가 높은 에세이지만, 책에 수록된 음악과 함께 읽을 때 문장은 훨씬 부드럽게 스며든다.


글쓰기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질 만큼 세계는 끊임없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가며, 도시들은 폐허가 되어간다.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다른 존재는 여전히 우리 삶의 희망이라고. “계속되는 파도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문장은 이 책이 품은 태도를 상징처럼 남긴다.


예쁜 꽃은 자주 피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도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 그래서 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목적지에 끝내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세상에는 그런 곳들이 무궁무진하다. 마음은 타인의 마음을 지나 잠시 다른 존재의 마음을 살아본다.


문학은 시대를 구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음에 불과하지만, 그 음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일렁이는 밤 속에서도, 그 미약한 음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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