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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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몰리나르. 그 낯선 이름의 정체는 여덟 해 동안 글을 써온 작가다.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에서 다뤄지는 것은 그 시간의 백 분의 일에 불과하다. 바바라 몰리나르가 쓴 모든 글은 찢겼기 때문이다. 다시 쓰이고, 또 찢기고, 몇 번이고 거듭 쓰기를 반복했다. 필요한 만큼 몇 번이고 다시 말해진 문장들은 고통의 극한까지 밀려간다. 의미가 그 근원의 완전한 어둠 속으로, 고통의 모태 속으로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는 문장을 세심하게 찢었다. 그렇게 조각들이 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 이 책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녀는 끝임없이 저항하면서도 새로움을 갈구했다. “사랑하고, 성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릴 정도로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소설 대부분은 대화보다는 인물의 움직임을 서술할 뿐인데도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침체된 내면이 겉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튀어나와버린다. 감정이 과잉으로 응축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이 허구인지 허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의 내면에서 피어난 한 조각이기도 하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허무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고통의 흔적과 파편을 따라갈 뿐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필요하다. 알려진 것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살아낸 흔적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이것은 상상도, 꿈도 아니다. 평생에 걸쳐 겪은 고통과 광기에 언어로 맞서 싸운 기록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 동안 아무리 찾아도 존재하지 않는 출구를 향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계속 나아가려 애쓰는 한 여성의 실존적 불안과 고독, 광기를 머리가 아니라 몸의 미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 없는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이 그의 전부를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분명 그의 일부를 마주했다는 확신이 남았다. 처음에는 차분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문맥에 발목을 잡혔지만, 뒤로 갈수록 이 사람도 이렇게 힘들었고,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위로를 받았고, 그 위로는 다시 글로 돌아왔다. 나 역시 이 애환을 문장으로 풀어가고 싶어진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 생전에 단 한 권의 책만을 남긴 그녀의 이름, 에마 라마단. 뒤라스는 이 작품을 읽고 시문을 썼고,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작가로서 힘겹게 쓴 작품을 스스로 폐기하는 고통과, 언젠가 폐기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여덟 해 동안 계속 써 내려가는 고통 중 무엇이 더 괴로운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엉망진창이고 고통스럽고, 그러나 아름다운 이 소설을 온전히 살려내기 위해 번역자는 깊이 고민했고 매혹되었다. 그 매혹이 독자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이하고 고통스러움으로 가득해서 무척 슬프지만 묘하게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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