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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민주주의는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힘을 잃었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게 하려면 필요하지만,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그 체제는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삶을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삶이 희생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문장은 지금 한국 정치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양 정당, 어느 쪽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당들은 이름을 바꾸고 구호를 바꿨지만, 정치의 방식은 몇 년 전과 다르지 않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지지층의 안전지대, 즉 팬덤 정치에 의존하며 변화의 책임을 회피한다. 여대야소의 상황이든 여소야대의 상황이든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약자를 위한다는 말은 공허했고, 정치는 불공정 논란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을 더 지치게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정당조차 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원칙도 잊힌 채 극단주의자의 큰 목소리만 정치의 무대 위로 올라왔다.
책은 2024년부터 연재된 칼럼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다시 작동할 수 있을지 분석한다. 과반 득표 실패, 중도, 보수의 이탈, 공포 마케팅에 의존한 선거 구도 등 정치가 작동을 멈춘 여러 징후를 짚어낸다. 검찰이 정치 문제를 대신 판단하게 된 상황은 정치 기능의 부전이 어떤 헌정 위기를 낳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등장한다. 미디어의 양극화와 혐오의 일상화, 정책 실종, 막말과 흠집 내기로 소비되는 정당정치의 현실 역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하지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균형감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제목은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지만 실제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수에 대한 지적은 분명하고 날카롭지만, 진보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민주당 역시 왜 과반 지지에 실패했는지, 어떤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 양 정당 모두에 실망한 독자의 시선에서 본다면, 책의 관점이 어느 정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정치는 약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쓰여야 한다. 그러나 정당들은 울타리 안의 지지층이 원하는 어젠다에 집중한 나머지 외연 확장보다는 왜소화의 길을 선택했다. 타협과 포용, 연대로 세상을 바꾸던 정치의 힘은 사라지고, 열성팬 정치와 포퓰리즘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견을 존중하고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장”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공간도 위축되고 말았다.
이 책은 한국의 정치가 왜 망가졌는지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진짜로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려면 어느 쪽의 편에 서 있다고 의심받지 않을 만큼의 깊이와 균형이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을 위한 정치야말로, 정치의 기본이며 '좋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