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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좀 ㅣ 환상하는 여자들 4
라일라 마르티네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평점 :
스페인 산골의 음산한 집. 이 집에는 어둠의 그림자들로 가득 차 있으며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결코 떠날 수 없는 저주에 걸려있다. 하지만, 이 집의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과 말이었다.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집은 살아있는 존재처럼 그녀들의 발걸음을 방해하며 욕망을 부추길 뿐이었다. 과연 그들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정적 감정의 압도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지게 되고, 그 무기력은 세대를 거슬러 학습된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욕망이 서린 집을 진정시킬 방법은 많지 않았다. 소설의 제목처럼 이 집의 근원이 되는 이는 타인을 좀먹고 자라나는 욕망의 산물이었다.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여 착취에 용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이득을 취하는 방식으로 그 비극을 대물림 해왔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처음엔 마냥 귀신의 집, 악령에 대한 소재라 생각해 펼쳐봤다가 사람들의 본성에 섬뜩해진다. 이 소설은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착취의 고리를 강조하며, 독자가 불편함 속에서도 깊은 성찰을 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복수에 매몰되지 않고 세대를 거쳐 이어진 악순환을 끊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복수가 아닌, 진정한 해방과 치유를 향한 인간의 고뇌와 성장을 담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은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이 무엇인지 묻고, 그 선택의 무게를 깊이 새기게 만든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가득했지만, 점차 이야기가 흘러가며 그 사이 공백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