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에 사로잡힌 기분이 든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두꺼운 페이지가 무색하게 이 책 속에 묻어나는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안개가 가득한 축축함,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의 건조함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짙게 표현된다. 이 날카로운 표현력이 영상으로 표현된다면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나흘에 걸쳐 이루어지고 서사는 태수가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고민과 그의 주변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가 항상 품어왔던 정의는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낙인’으로 얽매었고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으면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몸소 깨닫는다. 경찰이라는 사명감과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진실 속의 사실을 고민하던 그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무력함을 느낀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진실에 가려진 사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태수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생략되지 않은 부분의 순간들이 하나의 사건에 연결된 이들을 다시 연결하며 이야기의 흥미로움을 더한다. 추리소설 특유의 긴장감은 늘 비슷하게 흘러가는 나흘의 이야기를 펼치며 극대화된다. 사라진 현직 검사와 살인사건, 평화롭던 동네에 동시다발적으로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사건을 쫓을수록 알 수 없는 진실들이 형체를 드러낸다. 하나의 사건에 연결된 이야기들이 어떤 이들의 죽음으로 시작되며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변화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물들과 그 사이의 진실은 누군가에 의해 흩어지듯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과 멀지 않은 책의 이야기가 어둡고 무기력함을 더하여 은연중에 느꼈던 사실과 진실 사이의 괴리감을 끊임없이 내뿜는다. 정해진 결말이 만족스러웠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열린 결말이 어울렸다.
p340 거짓을 한 겹 더 벗겨낸다고 진실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어차피 서로 다른 거니까.
p352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희망을 채워 넣는 일이 점점 힘들어져. 절망은 달콤하지. 하지만 금방 휘발하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진공을 허락하지 않아.
p365 실제 세상은 달라요. 실제 세상에서는 내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물며 죽음이라는 장막 뒤로 숨어버린 일을 우리가 무슨 수로 다 알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