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해방
리차드 A.호슬리 지음, 손성현 옮김 / 다산글방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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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해방 : 사회적 맥락에서 예수의 유아기 설화 읽기

예수탄생 이야기는 상당히 단편적인 면으로만 읽혀지는 경우가 많다.

진보적인 신앙인들조차 예수 탄생 전설을 종교권력에 대한 저항,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의 해방 이야기로만 읽었지 난민들을 향한, 그리고 노동자와 여성을 향한 또한 원주민과 소수인종에 해방의 텍스트로서 읽으려 하지는 않았다.

호슬리는 이것을 ‘동의의 해석학’(hermeneutics of consent)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자신들의 상황을 중심으로 텍스트 읽기를 수행하는 해석 방식으로, 자기 중심적이고 배타적인, 비성찰적 읽기 패턴을 말하는 것이다.

호슬리에게 있어서 예수에 대한 역사비평학은 성서를 자기 중심적으로 읽으려는 태도에 대해 해체적인 효과가 있으며 성서 해석사에서 권력의 제도적 발현체로서의 그리스도교체제에 대한 해체적 차원을 갖는다.

이러한 읽기를 통해 오늘날의 세계를 읽는 새로운 관점이 획득될 수 있다. 
그가 ‘동태적 유비’(dynamic analogy)라고 부르는 개념. 즉, 오늘날과 그 당시의 해방적 인민운동을 유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서와 오늘 여기를 유비적으로 엮는 착취와 저항의 시각에서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자본주의적 소비의 축제’로부터 크리스마스가 해방되게 한다는 의미의 재구성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읽기는 해방적 인민운동의 영역을 하나의 주요모순으로 고착시키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다면화되고 실천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확장 시킬수 있다. 
낡은 이분법적 저항운동을 전선이 없는 일상의 저항으로 변화시킨다.

호슬리는 예수 탄생 전설을 저항운동의 텍스트로 읽는다. 
예수 탄생에 관한 성서의 표현들은 동시대 인민들의 예수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역사적 접근은 텍스트 내용의 세세한 부분까지를 정교하게 비평하며 그 안에서 인민의 염원과 저항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우리는 마리아 찬가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혁명적 행위가 종말론적 구원이 아니라 역사적인 구원을 가르킨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 해야한다.

"마리아 찬가에는 ("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는")하나님의 결정적 행위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언급된 성취된 구원을 가르킨다는 암시가 성서 어디에도 없다. 
사실상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 제일 앞 부분인 탄생 이야기에 이 노래를 가져다 놓은 것은 정반대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즉 찬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결정적 행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 예수의 전면적 활동에서 드러나는 것, 예수의 탄생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다. "

" 찬가는 교만한 외국과 자국의 지배자들을 뒤집어 엎음으로써 비천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대다수의 농민) 실현되는 하나님의 해방을 칭송한다.

‘지배자들’을 다루는장에서 호슬리는 "지배권력이 예수의 탄생 소식에 접하자 놀라고 두려워 허둥댔다는 ‘대중의 믿음’이 탄생 설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탄생 이야기 속에는 동시대 인민의 대중의 억압 상황과 염원이 있고 또한 설화 구술자들의 예수 운동적 주장과 희망이 얽혀 있다.
거기에는 로마제국과 봉신국 지배자들간의 정치사회적 지배구조로 인한 인민의 박탈로부터의, 그리고 가부장적인이며 성억압적인 제도와 관념으로부터의 해방 염원이 메시아 탄생 전설의 주된 역사적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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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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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냄비와 라면을 끼워팔아서 '격' 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운운 하는건 꼰대들의 꼬장이라 가볍게 무시한다지만 그렇게라도 책을 팔아보겠다는 출판사의 '밥벌이의 지겨움' 은 참으로 눈물 겹다.

김훈에 대해 이야기 하면 늘 그의 화려하고 현란한 문체에 대한 말들이 뒤따른다. 유혹적인 그의 문체는 언어에 대한 자신의 고백에 닿아있다.

“소리는 몸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몸이 아니면 소리를 빌려올 수가 없다. 
잠시 빌려오는 것이다. 
빌려서 쓰고 곧 돌려주는 것이다. 
소리를 곧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자리는 적막이다. 
그 짧은 동안만 흔들리고 구르고 굽이치는 것이다.
소리를 거스를 수 없다.”(현의 노래 253쪽)

그에게 글 혹은 언어의 기표는 의미를 담기 위해 잠시 빌려 쓰는 것이며 그 의미는 곧 사라져 버린다. 작가가 단어 혹은 문장에 부여한 의미는 독자나 청중에게로 가는 순간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독자에게 기표는 이제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고 다른 소통을 만들어 낸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는 '말의 의미' 즉 기의에 허무적이다.
기의가 기표에 의해 온전한 드러난다고 믿지 않으며 또한 전달된다고도 믿지 않는다.

“내가 무어라 말했을 때, 그 반대로 말을 해도 다 말이 되는 것 아닌가. 언어를 다루는 일의 힘겨움을 생각한다면 등에서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그의 고백에 그의 진실이 담겨 있다.
허무주의는 김훈만의 매혹적인 문체를 만들어 낸다. 
기의를 믿지 않기에 오히려 더욱 기표의 정제된 엄밀성에 집중한다.
의미의 소통에 허무하기에 공통의 기의만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말할수 있는 것들은 말할수 있다. 그러나 말할수 없는 것들은 말할수 없다" 는 그의 말은 기표와 기의간의 '가장 깊은 구멍'을 바라보는 허무주의자의 고백이다.

그의 에세이집은 언제나 즐겁다..^^ 
물론 예전에 읽은 글이 대부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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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파시즘
임지현.권혁범 외 지음 / 삼인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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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안의 파시즘- 임지현외

나는 '누가' 혹은 '우리'가 권력을 잡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전통의 이름으로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아니면 민중의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일상적 파시즘을 고사시키지 않는 한, 진정한 변혁은 불가능하다.(45쪽)

정치적 민주화마저 온전히 이루지 못한 시기에 일상의 파시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종의 금기였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당연시 됐고 '의인'들의 모임에서 '또다른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배제되어졌다.

진보를 표방하는 운동권에서마저 ‘주요모순/정치적 문제' 해결을 위해 내부의 성차별이나 군대식 위계 같은 상대적 악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데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졌었다.

우리안에 있는 일상의 차별과 부정의를 제거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전선을 약화시키고 내부분열을 촉진하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98년 8월,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공장을 점거한 채 총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현대차 노조는 사측과 277명의 정리해고에 대해서 합의를 했다.

그러나 이 일은 대상 인원을 조직 별로 할당하거나 부서를 통폐합하는 따위의 수고로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대다수가 남성으로 이루어진 자동차 생산 현장이 아닌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 276명을 모조리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진보' 진영 내에서의 성차별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속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빌미로 4만여 조합원들의 일자리 보전을 위해 제물이 된 식당 여성노동자 중 남은 144명의 긴 싸움은 그날이 시작이었다.
(이들의 수난과 투쟁은 다큐 밥· 꽃· 양에서 처절히 보여준다.).

일상적 파시즘의 희생자는 사회의 권력 구조가 바뀐다고 해서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적 파시즘에 문제제기를 시작한 임지현 교수는 “법제적 민주화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무늬라면 파시즘은 물밑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국사회의 결”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이러한 집단심성은 “제국주의가 강제한 식민지 규율 체제, 뒤이은 분단과 냉전, 한국전쟁이 결과한 반공규율 체제, 유신독재와 1980년대 신군부 집권에 따른 긴 어둠의 터널에 대한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뿌리는 전체주의적 심성과 위계질서를 구조화하는 언어생활과 복종과 규율을 내면화시키는 학교교육, 여성을 내적 식민지로 만드는 가부장제 등으로 재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
"파시즘의 유산은 우리 안에 넓고 깊숙이 잔존해 있다. 
권력자만이 아니라 그에 저항하는 자들까지도 매료시키고 사로잡는 권력의 위력.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산해야 직성이 풀리는 물신주의. 살아 남기 위한 나날의 각박한 생존 경쟁.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초조함과, 승리하면 모든 것을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권위주의. 이 모든 것 속에 파시즘은 오늘도 살아 있다.(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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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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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주의에 관한 거친 정리..

진보와 보수 두얼굴로 등장하는 한국의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국민국가의 구성원을 민족이라는 동질적 집단으로 의제화하기 위한 것으로, 내부의 역학관계에 따라 또 국가간 체제의 성격 변화에 따라 가변적인 정체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므로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그 변화에 따라 민족의 구성과 성격이 좌우된다.그러므로 민족주의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국가가 만들어낸 또는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결국 민족은 민족주의가 만들어낸다.

일본 식민지 시절 저항 담론의 하나로 기능했던 언어적민족주의는 일제민족주의와 싸워나가면서 해방후 민족주의 좌파인 '민중적 민족주의'를 형성한다. 
민중적민족주의는 김구 장준하에 의해 통일운동 민족해방 등의 저항담론으로 나아가고 우파에 비해 사회주의에 대하여 훨씬 관용적이고, 반제 입장에서도 선명성이 있으며, 대중의 조직적 단결을 강조한다. 
경제적 지향성에서도 독자적 민족경제의 수립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고 
정치적 입장에서 대안적 체계를 모색하는 경향성이 일정하게 존재한다

이에 대항해 이승만 / 박정희 정부에의해 지배담론으로서 민족주의 우파 '관주도 민족주의' 가 만들어진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민족=국민' '개인=국가' 의 담론를 생산해 내고 민족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결국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지배담론으로 자리잡아간다.

맑스주의의 유입과 사회구성체 논쟁을 통해 새로운 저항담론이 등장하자 민중적 민족주의는 저항담론으로서의 이론적 위치를 서서히 잃어갔지만 정치적, 대중적 위치로서는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기존의 저항담론의 하나로 작동했던 민중적민족주의가 민주화를 거치고 이를 기반으로한 세력이 권력화 혹은 권력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면서 과거 관주도민족주의와 유사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즉 저항담론으로 기능을 상실해 버리고 민족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1990년 중후반 새로운 저항 담론으로 등장한 탈식민주의는 지배담론인 민족주의를 해체하고자 했고 덕분에 민족주의우파(관주도민족주의, 뉴라이트)와 여전히 유의미한 힘을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좌파 (민중적민족주의) 진영으로부터 다양한 공격을 받게 된다.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에 관한 논쟁은 역사학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쟁이 이루어졌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사건 또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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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신서 377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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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작고하신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민족'은 '민족주의'와 '정치' 가 만들어낸 상상의 공동체이다.

앤더슨의 책 '상상의 공동체' 는 민족에 관한 논의에 일대 전환점을 이룬 책이다. 
이 책의 발간 이후 민족에 대한 논의는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민족의 형성, 또는 민족의 정체성,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민족의 해체에 대해서 논의하게 하였다.

앤더슨의 출발점은 민족성, 혹은 같은 어원을 가진 민족됨과 민족주의는 특수한 종류의 문화적 조형물이라는 것이다"(23쪽).

민족을 “자체로 제한되어 있으면서 주권을 갖춘 것으로 상상되는,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an imagined political community--and imagined as both inherently limited and sovereign)”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상’이란 말은 민족 구성원간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다.

민족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알고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는 없다.
서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의 민족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은 상상에 의한 것이다. 
한민족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민족 구성원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과 한민족 구성원이갖는 동질성을 갖고 있다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 개념/ 민족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즉 근대 이전 사회에서 이미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기능을 하는 문화 체계는 ‘종교 공동체’와 ‘왕조 국가’였다. 
하지만 중세 말기 이후 비유럽 세계에 대한 탐험과 인쇄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앤더슨에 의하면, 인쇄술의 발달은 동시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생성시키면서 ‘수평적이고 세속적이며 횡적인 시간’ 형태의 공동체들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공동체에 대한 상상과 동질성이 국가나 권력, 정치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국가나 권력,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곧 민족주의 이다.

앤더슨은 몇가지 민족주의를 제시하지만 독립적으로 하나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연결되어서 작동한다.

1) 크리올 민족주의(creole nationalism): 모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정착한 이주민들이 모국의 간섭에 대해 저항하거나 혹은 모국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새로 만드는 대신 영어,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 등의 지배자의 언어 또는 모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 예로미국, 남미 각국,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퀘벡, 싱가폴 등을 꼽을 수 있다.

2) 언어적 민족주의(linguistic nationalism): 민중적 민족주의’(popular nationalism) 민족의 공용어(lingua franca)를 만드는 민족주의. 유럽적 기원을 가지나 전세계적으로 존재하는 유형이다. 프랑스, 그리스, 노르웨이,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등의 사례.

3) 관주도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아래로부터의 민족주의, 민중적민족주의 대한 반동적 반작용으로 등장한다. 
지배를 정당화 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 흔히 ‘어용적 민족주의’로도 번역된다. 
러시아제국 민족주의, 오토만제국 민족주의, 프랑스제국 민족주의, 명치유신 이후 일제 민족주의, 중화민족주의, 박정희 정권의 민족주의 등이 사례이다.

역사적으로 이와 같이 크게 3가지 이고 
4) 장거리 민족주의(long-distance nationalism): 모국이란 지역적 장소에 구애받지않는 민족주의. 특히 세계화 시대에 점점 대두 되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 호주의 시크민족주의자, 미국 국적의 한국민족주의자의 경우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적 반제국주의 운동에 기반한 언어적/민중적 민족주의와 이에 반동적으로 만들어진 관주도 민족주의가 공존하는 형태이다.

모형과 도용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의 유형별 설명이 나온 이후 앤더슨의 ‘상상’ 논의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스스로를 ‘죽음을 불사하는’ 애착의 대상으로 만드는 방식(8장 애국주의와 인종주의),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민족주의의 도용 사례라는 것(9장 역사의 천사), 
식민국가가 지배권을 상상하는 방식을 형성한 인구조사와 지도와 박물관이라는 권력제도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족주의에 계승되었다는 것(10장 쎈써스, 지도, 박물관), 
기억과 망각의 장치들을 통해 민족의 역사가 소급하여 구성되는 과정(11장 기억과 망각)으로 이어진다.

은유로서의 민족이 정치적 수사의 결과라면 민족이 태고시대부터 존재하여 왔
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민족에 대한 신화는 역사적 허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와 개연적인 관계를 가지는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운동’의 형태”인것도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여전히 이 상상의 공동체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치의 영역에서 유의미하게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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