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오직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서만 의미 있는 존재로 취급되는 타자화를 말하는데, 이때 여성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 정의되거나 남성들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역할로서만 존재하게 될 뿐 남성과 궁긍적으로 동등한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인식되지도 인정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남성동성사회는 여성 없는 사회가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다. 반면 여성동성사회의 상상력은 남성 없는 사회, 분리주의에 바탕을 둔다. 이는여성혐오와 같은 방식으로 남성혐오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한편, 대중화된 여성운동의 일부 흐름이 분리주의에 기반한 남성혐오를 주된 감정정치적 동학dynamics을 사용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없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반응적 성격이라는 맥락이 이해될 필요가 있다. - P31
성차별과 젠더 기반 폭력은 2000년대 이후 명시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입법의 공백과 더불어 행정의 무능과 무지가 겹친 상태에서 사실상 방치에 가까웠고,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오히려 차별과 폭력에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군 가산점 논란 이후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 형성된 ‘권리만 주장하지, 의무는 지지 않는다는 여성 인식은 이른바 ‘가성비 전쟁으로 이어졌다. 일간베스트에서 유행한 ‘보○○치‘ 등의 단어는 성별을 자원으로 삼아 남성을 선택하는 여성에 대한 분노를 담은 말이다. 그 이전에 만들어져 유통된된장녀나 김치녀‘ 등은 모두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말인데, 이러한 멸칭을 만들어내는 배경에는 이성애 데이트 관계전반이 불공정한 거래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 P40
20대 남성들이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 등으로 결집하는 이유는 보통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이행 이후 남성적 특권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을 불안해하는 위기의식의 단면이라고 해석되어왔다. 하지만 이것은 남성/성의 위기라기보다는 변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남성은 이제 자신을 생계부양자 또는 유일한 임금수입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거기에서 권력이 나온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차별을 통해 특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도 저물었다. 이러한 조건의 변화 속에서 남성은 인터넷상에서 가장이 아니라개인으로,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자신을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처지에서 차별은 팔지 않거나 차등 가격을 매기는 것으로이해된다. 가진 것이 있건 없건 지금 남성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고 - P41
욕하는 여성 형상이 꽃뱀인 이유다. 차별을 통해 특권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고 믿는 이 세대의 남성은 자신이 오히려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차별의증거는 사실 별로 없거나, 대부분 억지거나, 아니면 아주 예외적인사례에 한정된다. 큰 단위의 통계에서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고, 직업 선택의 기회나 승진에서 차별받는 것, 경력단절을 비롯한육아 고충의 문제, 성폭력을 비롯해 젠더 폭력의 희생자 비율에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 등 명백하게 여전히 성차별적인 사회다. 하지만 남성들은 이런 사실을 믿지 않는다. 자신이 그런 차별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세계는 곧 자기자신이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성평등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가짜 뉴스를 반복 인용함으로써, 엄존하는 성차별을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공교롭게도 대부분 남성이다)에게만 보이지않는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 P42
있음을 경고하는, 뼈아프게 새겨두어야 할 역사다. 어떤 가해자는 왜 그렇게 빨리 제거되고 사적이든 공적이든 처벌을 받는데, 어떤 가해자는 왜 그렇게나 관용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실제로 기존의 통념이 제공한 성범죄자의 전형에 들어맞고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집단에 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기관과사법부는 별다른 의심 없이 사건을 조사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상식에 맞는 판결을 내린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것이 성폭력 문제의 한 축을 받치고 있는 통념이라면, 가해자 같은 가해자에게만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반드시 깨져야 할 선입견이다. 이 통념과 선입견 때문에 강간은 언제나 소수의 예외적인 비극이 되었고, 피해자는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받았으며, 가해자일 법한극소수의 가해자만 처벌을 받았다. 이렇게 강간이라는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부정의가 발생하는 순간에 집중해보면, 강간이라는 문제가왜 그렇게 축소되어왔는지, 왜 그렇게 강간을 둘러싼 통념이 바뀌지 않는지 알 수 있다. - P88
밝히는 일 정도는 하지 않냐고 말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내가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이 나올때 선을 넘는 남성이 있기는 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선을 넘는다는 것은 단톡방에서, 에브리타임에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강간을 입에 올리며 자신의 성적 에너지를 과시하는 행동 등을 말한다.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나 남성 대부분은 이런 이야기에 노출되어 있다. 공모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되거나 주변인이 되거나 그들과 아무 관계도 맺지 않거나 관련된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남성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들이 정상적으로 취급되는 것은 아니에요." K씨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 P90
남성은 계급이 아니며 여성 역시 그렇다. 그렇다고 특정한 조건의남성을 유형화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성성은 언제나 변화하고 경합적이지만, 남성성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남성이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남성은 대체로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므로 남성성 연구에 필요한 태도는, 아니 모든 종류의 젠더 연구에 필요한 태도는 교차적 관점이다. 교차적 관점으로 젠더를 연구할 때 집단으로서의 남성을 유형화할 수 있다. 젠더 연구는 젠더에 관한 연구인 동시에 젠더와 상호작용하는 다른 범주의 영향력을 기술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둘러싼 문화적 가정법들을 계속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70대 경상도 남자들의 남성성을 연구하려면 계급과 세대, 지역적 특징 같은 표지를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젠더를주요 분석범주로 사용해야 한다. - P91
히 최근 극단적으로 유해한 남성들이 남성 문화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성 일반이 모두 문제라는 말보다는,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요인을 찾아내고 그 영향력을 줄일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최근에는폭력의 문제를 전염병처럼 취급해서 핵심 원인과 감염 정도를 분류하고 각각 노출된 정도에 따라 격리수용부터 오염제거, 재교육 등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법을 달리하자는 제안도 있다. - P111
윤리 - 정치적 전환으로서의 미루1 인간은 타인에게 공감받고 싶어 한다.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구성되어야 한다. 피해에 쉽게 동일시하거나 가해자를 쉽게 타자화하지 않을 때 타자의 고통을 존중하고 귀를 기울이는 사회가 가능하다. 모두가 동등하게 한 명의 인간이자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유지할 때 동일시와 타자화가 설 자리는 없어진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며칠, 단 하루, 또는 단 한 시간 동안이나마 희망이 실현되고 환희가 작열하고개인과 집단 간의 경계가 제거된 세계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경험은 소중한 기억이 되어 앞으로의 항해를 견딜 - P139
강간에 대한 정의는 강간이 누구의 무엇에 대한 죄인지에 따라 달라졌다. 오랫동안 강간은 (피해) 여성이 아니라 (여성을 소유한) 남성에 대한 침해였다. 폭력의 역사를 수집하고 기록한 스티브 핑커StevenPinker에 따르면 전 세계의 도덕과 법체계에서 강간은 여성의 아버지에게서 딸의 처녀성을 훔치는 행위로, 남편에게서 아내의 정조를 빼앗는 행위로 규정되었다. 강간을 뜻하는 단어 rape‘는 ‘ravage(파괴), rapacious(강탈적인’, usurp(탈취)와 어원이 같다. 전쟁 중에는 강간이 병사들의 권리였고 여성은 전리품이었다. 중세 유럽 국가에서 사법 정의가 국유화되면서 강간이 비로소 국가에 대한 불법행위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는 결코 성 중립적이지 않았다. 판사와변호인은 "움직이는 바늘에는 실을 펠 수 없다", "꽉 끼는 청바지를남이 벗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로 여성의 의지에 반해 억지로 성관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간은 ‘폭력‘이지만 ‘문화로 - P146
강간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그리고 도덕적 침해에놓여 있다. 침해는 사실상 강간과 같은 말이다. 강간범의 목적은 피해자를 공포에 떨게 하고, 지배하고, 모욕하며,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데 있다.)이 같은 생각은 1995년 서울대 조교 사건 항소심 공판에 이화여대여성학과 대학원생들이 제출한 의견서에도 등장한다. 성기 노출에서부터 강간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특징은 남성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학대하고 강요하며, 힘을 사용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 행위들은 동일한 목적을 갖는다는 점에서 서로가 통할 수 있고, 쉽게 구분되지 않는 연속적인 요소와 사건들이며 이 각각은 모두 성폭력인 것입니다 - P149
속해서 이 단어가 가진 한계를 우려하고 걱정해왔다. 그중에서도특히 정희진은 피해자중심주의는 여성주의적 언어가 아니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피해자에게 객관성의 지위를 독점하도록 하는 것은 남성 중심적 사회를 해체하지도, 객관성에 관한 새로운 인식론을 전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28) 이렇게 되면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 증명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떠넘기는 부작용마저 막을 수 없게 된다. 성폭력 사건의 객관성은 피해 여성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를 존중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29) 나 역시 다른 글에서피해자중심주의가 피해자 되기 경쟁을 만들어내서 결국 피해자의경험을 존중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30) - P164
없다. 여성주의적 원칙으로 이견 없이 제안된 바 있는 것은 수사와재판 절차에서의 성인지감수성이다. 절차에서 성인지감수성을 견지하는 것과 피해자의 의사대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다른데도, 많은 사람은 가능하면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을 피해자중심주의로 이해한다.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다. 피해자 개인에게 사건의모든 규정과 처벌방식까지 일임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부담을 지울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피해자는 계속 변화하는 존재이며, 피해 경험은 피해자의 삶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주체성이 변화하는 과정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 P165
성폭력 예방 교육에 소리를 질러라, 저항하라, 의사 표현을 분명히하라 등의 말은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당신의 목숨과 안전이 가장중요하다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는 위기의 순간에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가해자와 협상하고, 달래고, 때로는 가해자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척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정에 가면 이 모든 행동이 개인의 안전을 위한 합리적 행동이 아니라 동의를 했다는모호한 증거로 이해되곤 한다. 피해자의 거부 의사는 가볍게 부인되고,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은 의심스러운 행동이 된다. 이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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