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트: 악마는 있다 - The Rit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선악의 간극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여운 영혼 마이클. 가업이 장의사인 탓에 소시적 부터 수 많은 사체를 접하게 된다. 평범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그에게 가장 아름답고도 가혹한 잔상은 어머니의 사체. 그에게 어머니는 선善과 같은 존재(성모마리아)이며 이에 반해 죽음을 치장하는 장의사인 아버지는 전형적인 악惡의 상징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며 천사와 함께 있다는 어머니의 메시지와 아내의 식은 손톱에 붉은 메니큐어를 칠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교차하며 그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러다 성경 한 구절처럼 어느 눈 먼 신이 그를 택해 신학교를 가게 되지만 신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감으로 방황하게 되고 그 끝자락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된다. 퇴마사 사제 양성교육.    

 

악을 선의 결핍이라고 본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악을 선과 대립하는 실체로 본 아퀴나스 신학은 악마의 존재를 실체로 인정했다.  그리하여 후기 중세교회는 악마를 쫓아내는 의식을 전문적으로 집례 하는 퇴마사 사제를 양성했다.     - 벌거벗은 성서 (이상성)

  

 

     

  

- 인간이 악마인데 누구와 싸우란 말입니까.

악령 홀림을 생물학적,인지심리학적 요인에 의한 '질환'으로 바라보는 마이클은 마침내 노회한 엑소시스트 루카스 신부와 조우하게 된다.

이 영화가 살아있는 이유 중 하나인 안소니 홉킨스가 루카스 역으로 나오는 데 그 옛날 살기충천한 렉터박사의 광력狂力은 세월의 풍광에도 날이 서 있다. 

그는 악의 존재를 의심하는 마이클에게 사제이기 전에 악마에게 수시로 농락 당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호소하며 차갑게 경고한다.

-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라네.  

  

또..또 시작이군. 두려움을 무기로 인간을 겁박해 그들의 내면까지도 권력을 행사해 보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   

가령 라이프니츠를 생각해보자. 그는 세 가지 악을 구별한 바 있다. 형이상학적 악, 자연적 악, 도덕적 악. 여기서 형이상학적 악이란 '죽음'을 , 자연적 악은 기근이나 질병과 같은 재해를, 그리고 도덕적 악은 문자 그대로 도덕적인 죄를 가리킨다.  

기독교의 전략은 여기서 형이상학적 악과 도덕적 악을 혼동하고 있다.   

 - 춤추는 죽음(진중권)

  

하지만 그 진부한 발상이 먹히기에 우린 이미 충분히 영악하지 않는가. 

 

공 들이던 어린 임신부 로사리아의 죽음을 목도하자 죄책감에 시달리던 루카스는 그만 악마의 먹이가 되어버리고 그런 그를 구하려던 마이클은 반신반의하던 악마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마이클의 영혼을 불러들이기 위한 서곡에 불과했던 것 즉, 그를 위한 악마의 오래 전 역사役事임을 알고 경악한다.

불신의 벽을 타고 악혈이 그의 영혼을 집어 삼키려는 찰나, 죽음으로 묻혔던 어머니의 메시지가 그를 구원해 내며 마침내 그 질긴 악연의 이름을 불러낸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불결한 영혼아. 너의 이름을 내게 밝혀라!   

 

이름은 실존이다. 신이 아담에게 내린 첫 소명은 무명의 자연에게 이름을 부여하여 실체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사탄에 의해 지혜를 갖게 된 인간은 이제 자연을 넘어 추상적인 개념에까지 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악의 존재는 인간의 불손한 의도가 다분히 함축되어 있다. 인간의 무한한 탐욕은 종교와 결탁하여 죄에 악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죽음마저 통제하려 한다. 

   

 

 

   부활절(4월24일)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영화가 개봉(21일)되더니 관람 후 부작용으로 시달리고 있는 나 같은 종자種者를 위해 친절하게도 그 처방전까지 따끈하게 마련해 놓았다.

이 책은 엑소시즘 이전에 '악'이라는 근본적인 실체에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영화를 보면서 가지는 반감과 의구심들에 대한 조심스런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은 커다란 물음표를 안겨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50년 내로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는지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되죠." 마초니 박사의 말이다.P178

언젠가는 과학이 이런 문제도  밝혀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단순히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험을 무시하는 것은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명분을 배반하는 일일 것이다.  P283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한동안 나는 혼돈 속에 얼어 붙어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신음神音은 어린 내 영혼을 울려 놓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루카스 신부의 탈을 쓴 악마가 제 이름을 토해내며 울부짖는 마지막 장면은 나의 뇌리에 문신처럼 와서 박혔다.  

바알. 그의 이름은 바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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