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이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소유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가진 것을 인식하고 감사하는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 프레드리히 쾨니히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오늘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 마리아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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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일 자세가 된 이에게
조언을 하고
원숭이에게는 조언하지 말게.
멋쟁이새처럼 집을 잃을 테니.

어둠과 어울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이들에게 동굴 속 어둠은 없애고 싶은 거대한 괴물이었다.

가련한 사람들은 금식을 하고 또 했다. 그렇게 아무리 희생해도 어둠은 떠나지 않았고, 괴물은 여전히 동굴 속에 남아 있었다

구멍마다 일일이 불을 비춰 보았지만 어디에도 괴물은 없었다. 마치 괴물이 그곳에 있었던 적이 전혀 없는 것처럼.

귀신이 손을 내저으며 다급하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나를 살려주면 매일 아침마다 당신 머리맡에 20루피를 가져다 놓겠소."

그 순간 촌장은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나한테 죽을 만큼 얻어맞았으니 다시는 마을에 내려와 소란을 피우지 않을 거야. 그러니 죽일 필요까지야 뭐 있겠어. 놈을 살려주고 나는 그 대신 돈을 벌면 되겠어. 그것이 서로 이득이야.’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자. 지난번에는 나한테 꼼짝을 못했으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네가 이길 수 있게 되었지?"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당신은 마을의 정의를 위해 싸웠지만, 오늘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싸웠으니까."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전과 같거나 때로는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몇 년째 들어도 전혀 바뀌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람들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무한한 자비심을 가진 당신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당신의 능력과 자비심을 발휘해 그들 모두를 해방시켜 주지 않습니까?

내가 해탈에 이르는 길을 걸었으며 그래서 그 길을 완벽히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를 계속 찾아온다네.

그들은 내게 와서 묻지.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 해탈에 이르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숨길 게 뭐가 있겠나? 나는 그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주지. ‘이것이 바로 그 길이다.’라고.

만약 누군가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이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아주 좋은 길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길에 한 걸음도 내딛지 않을 것이다. 아주 멋진 길이지만 그 길을 수고스럽게 걸어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누구도 최종 목표에 데려가기 위해 내 어깨에 그 사람을 짊어지고 가지는 않는다네.

누구도 다른 사람을 어깨에 짊어지고 목적지로 데려갈 수는 없네.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지. ‘이것이 바로 그 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 길을 걸은 방법입니다. 당신도 해 보세요. 당신도 걸어 보세요. 최종 목표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는 스스로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가야 하네. 그 길을 한 걸음 내디딘 사람은 목적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지.

100걸음을 걸은 사람은 목적지에 100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고. 그 길을 모두 걸은 사람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지. 그대도 스스로 길을 걸어야 하네."

세상일이든 정신적 추구이든 우리는 중심부로 달려가 곧바로 성취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중심에 도달하기까지 주변에서 얼마나 오래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가가 진정한 힘의 원천이다

당신들이 뿌리는 물이 죽어서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사라진 조상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왜 내 물이 불과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내 논에 도달할 수 없을까요?

성직자들은 순간 성자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그들은 그를 바보라고 부른 것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했지만, 이후 그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방식을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진실을 말하되 올바른 단어와 적절한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지혜이다. 특히 진지한 문제에 대해 말할 때는 듣는 이의 감성과 감정을 상하게 하는 단어나 구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나뭇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은 폐하의 가족 구성원과 가까운 일족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나무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잎은 결국 폐하를 상징합니다. 고귀하신 폐하, 간단히 말하면 꿈은 폐하가 돌아가시기 전에 폐하의 가족이 모두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소중한 사람들은 다 죽고 폐하만 남을 것입니다.

그 꿈은 폐하께서 무병장수하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온갖 역경을 견뎌 내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실 것입니다. 폐하의 가문과 일족 그 누구도 폐하에 대해 음모를 꾸밀 수 없으며 평생 폐하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일에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 모든 이보다 더 오래 사실 것입니다.

그 점성술사와 저는 사실을 정직하게 말했지만 꿈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왕실 점성술사는 가족과 친족의 죽음에 대해 초점을 맞춘 반면, 저는 폐하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산다는 장수의 징조로 해석했습니다. 폐하의 가족 모두가 정해진 운명대로 오래 살겠지만 폐하는 그 모든 이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 복을 받으셨습니다.

"하룻밤 동안 칼집 없는 칼이 침대 위에서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는 잔인한 장난이군요. 하지만 나는 매일 밤과 매일 낮 죽음이 내 위에서 번쩍이는 칼날처럼 나를 겨누고 있소.

왕에게 20만 개의 금화를 보여 주었다. 왕이 이유를 묻자 차나키아는 하룻밤에 그 많은 금화를 모을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인간의 살 20그램을 얻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폐하께서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살아 있는 생명체의 살이 과연 값싼 것인지를. 우리의 생명이 우리에게 소중하듯이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도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와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너를 벌한 것이다.

논쟁이 논쟁다워지려면 적어도 자신보다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토론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함으로써 너는 소중한 시간과 기운을 낭비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네가 벌을 받는 진짜 이유이다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돈을 돌려받고 싶으면 당신 아들이 ‘절대로 내 조언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언제나 지켜보겠다.’고 적힌 서류에 서명해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아비 나히 카비 나히.’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라는 뜻의 힌디어 속담이다.

나마스테는
‘내 안의 신성이 당신 안의 신성에게 경배합니다.’의 뜻

하리옴은
‘당신의 고통을 신이 제거해 주기를!’의 뜻

‘옴 나마 시바야’는
‘나쁜 일들을 시바 신이 파괴하기를!’의 뜻

‘마하데브’는
‘모두의 안에 있는 최고의 신’을 부르는 인사이다.

‘자이 람’은
‘당신이 승리하도록 신이 힘을 주기를!’의 뜻이다.

어른이나 존경받는 사람에게 주로 하는 인사말인
"프라남(당신 안의 좋은 본성을 나도 닮게 되기를)!"

그 인사말과 미소를 여기에 있는 금고 안의 내 재산에게 전해 주겠다고. 저녁마다 나는 여기에 돌아와 금고 앞에 서서 사람들의 인사말을 전한다네. 그리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당하던 시절을 잊지 않지

우리는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에게 인사하는가,
아니면 그의 지위와 재산과 권력에게 인사하는가?

그런 것과 관계없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인사하는 것이 바로 여러 인사말이 가진 진정한 의미이다.

서로의 안에 있는 존재 혹은 신이 서로에게 인사하며 절하는 것이다

"만트라를 암송하면서 화살을 쏘는 사람은 그것이 지닌 엄청난 힘을 실감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트라의 힘을 실어 화살을 날리면 단 한 개의 화살로 이 바니안나무의 모든 잎을 뚫을 수 있다."

너는 호기심과 인내심과 배우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제자들은 내가 가르치고 시범까지 보인 만트라를 배우고 실험해 보려는 의지가 약했다. 그저 놀라워하기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그 앎을 직접 시도해 보고 통달하려는 열의와 욕구를 보여 주었다. 바로 그것이 앞으로 너를 다른 이들과 차이가 있는 특출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수학자도 아니며 문제를 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속에서 한 가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내게 방정식 문제와 문을 여는 것은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문제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내면의 목소리를 믿고 나는 문을 열어 보았고, 문이 열렸습니다. 따라서 문에 새겨진 수학 문제는 실제로는 문을 여는 것과 관계없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우리가 문제를 푸는 데만 열중하고 문을 열어 보지도 않은 것일 뿐입니다. 아름다운 궁전의 문은 그냥 닫혀 있었을 뿐이지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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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만약 업계의 1등이 아니고 최고의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에 ‘내가 1등이고 내가 최고의 전문가’라고 인식시킨다면 언젠가 그 분야의 1등이 되고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자신감을 무기로 일단 시작해야 한다.
언제나 시작이 먼저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이 아닌 이미지에 돈을 소비한다.
이는 우리가 기업의 제품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해당 기업의 제품 이미지를 보고 소비한다.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세상에 나의 이미지를 알려야 한다.

세상에 나의 이미지를 어떻게 인식시키고 소비하게끔 만드느냐에 따라 부의 크기도 결정된다

‘유명해진다’는 것도 세상에 이미지를 인식시키는 행위이며, 1인 기업 또한 이미지를 세상에 인식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영업의 달인’이라는 이미지가 한번 심어지면 사람들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든 항상 옳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어떤 말을 하든 동조해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영업의 달인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히 굳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기만 하면 세상은 응원의 손길을 보내준다. 물론 이런 작업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 겨우 1인 기업가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막연한 개념으로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진리다.

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1인 기업을 지속하고 성공하게끔 이끄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과연 무엇일까? 업종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나를 브랜딩하는 법과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였다.

그런 강의도 있어요? 그런 걸 배워서 뭐해요?"라며
의아해하지만, 세상에는 고수들이 존재하고 그들에게서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려는 자세는 1인 기업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돈벌이는 철학이나 학문이 아닌 하나의 삶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돈벌이라는 숭고한 행위를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밥벌이라고 비하하는 사람이 과연 시간과 경제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돈을 버는 행위를 무시하는 것은 삶 자체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긴다"는 맹자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원하는 방법으로 돈을 벌고 살아간다는 말과 같다.

풍요롭고 존경 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돈을 벌면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1인 기업가로서 돈을 벌며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나가는 일과 같다.

나라는 이름의 예술 작품을 세상에 그려나가고 그 작품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길이기에 삶이자 예술로서의 1인 기업을 추구해야 한다.

1인 기업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남기고 아름다운 인생을 경험하느냐는 어떻게 돈을 버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더더욱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이렇듯 1인 기업가는 항상 공부하고 배워서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해야 결과도 좋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의 경쟁자들이 모르는 정보를 독점하고 먼저 시스템화에 성공해야 수월하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돈을 번다’는 것은 본래 학벌이나 스펙과는 무관하다. 학벌이나 스펙이 좋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더 많은 돈을 벌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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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 10년 차 서점인의 일상 균형 에세이
김성광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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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니 재미있었다

육아+독서+일을 병행하는 이야기

나는 육아를 하지 않아서 육아부분은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육아할 필요 없으니)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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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지금읽고있는책’, ‘#출퇴근독서’라 해시태그를 달아서 읽고 있는 책을 매일 소개한다. 팔로워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글을 올리려 애쓴다. 내게는 의미 있는 일상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매출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고, 내가 실제로 읽은 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겨우 점심시간에 10분 정도 들여서 그날의 인상적인 구절 정도를 정리해 책 사진과 함께 올린다.

책에 대한 정확한 감상과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지를 상세히 알리기는 힘들다.

서점원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꼭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일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이니까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판단은 내려야 했고 시간이 필요하다 해서 면접을 수십 번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름 최선을 다해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못하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은 늘 찜찜한 기분을 남긴다.

첫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한 직장에서 10년을 채운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이지 아리송하다. 내게 잘 맞았다는 뜻이니 좋은 듯하면서도, 너무 단조로운 경력을 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온라인 서점이라 독자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책의 작은 오르내림에도 사람들의 욕망과 관심사가 반영되어 있었고, 나는 세상의 복잡한 무늬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을 얻은 기분이었다.

좋기만 했을 리는 없다. 내가 좋아하던 작가의 예상치 못한 민낯을 보기도 했고, 독자로서 좋아하던 출판사를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이, 그런 책을 출간한 곳이 어떻게…… 라며 탄식했던 적이 10년의 시간 동안 심심치 않게 있었다.

언제나 책이 열어주는 인식의 길에 찬탄을 표했지만, 그런 날엔 책이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내놓은 훌륭했던 책이 그들을 위한 훌륭한 방패가 되곤 했다.

늘 책에 에워싸여 있었지만 책에 대한 갈증이 오히려 커지기도 했다. 독자로서의 나는 나름의 생각과 취향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직원으로서 손이 많이 가는 책은 다르다. 주문이 많은 책일수록 손이 더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업무와 취향을 두루 아우르며 일하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정말 ‘좋은 책’이라고 여기는 책을 소개하는 일에 늘 목말랐다.

서점원으로서 보낸 지난 시간을 요약하자면, 좋았다거나 씁쓸했다거나 하는 말보다는 ‘목말랐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내가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 나의 눈에 든 책을 판매하는 일에 오래 공들일 수 있길 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 ‘나오면 팔리는 책’으로 변모하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다

능숙함에 이르는 길은 ‘열심’보다는 ‘계속’이다.

열심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여러 사례를 겪어봐야 하고 비슷한 사례를 여러 번 경험하기도 해야 한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성과가 이따금 나올 수는 있지만 시간을 들이지 않고 능숙해질 순 없다.

능숙해지면 비로소, 내가 일하는 시간 속에 내가 사랑하는 책에 열심을 쏟을 시간도 생기기 시작한다. 계속해야 열심도 가능해진다.

10년 넘게 ‘계속’했더니 정말 나는 많이 능숙해졌다.

내가 공들여 소개하는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랭하곤 했다. 하루에 한 부 팔리거나, 한 부도 팔리지 않던 책이 하루에 두세 부라도 나가길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이익이 거의 나지 않는 업계에서도 나름 경쟁은 또 치열한데 시장 규모는 커지지 않고 있다.

현재 주요 도서 구매층은 사십 대이고 업계에선 젊은 독자를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다. 그 독자들과 통하는 감각을 지닌 직원들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 업계에서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서점 직원, 특히 온라인 서점 직원은 인공지능이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자리다.

각 도서의 주문 수량이나 개별 독자의 취향에 맞춤한 책을 추천하는 일은 잘 설계된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점 직원으로 늙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변수가 많다. 어쩌면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게 옳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나는 서점엔 계속 사람이 필요하다 믿는다. 자기 일을 오래 갈고닦은 사람이 필요하다 믿는다.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에 기대어 내 일을 계속, 계속 해가고 싶다.

계속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하다 보면(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2018, 어크로스— 제현주, 《일하는 마음》

약 2년 동안 〈채널예스〉의 ‘솔직히 말해서’ ‘아이가 잠든 새벽에’ 두 코너에 글을 썼다.

가만히 두면 흘러가버릴 것들을 글로 남기는 일은 멋진 경험이었다. 한 시절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글을 쓰는 시간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어서, 새벽에 카페로 나가 하품 쏟아내며 글을 썼다. 포기한 잠이 많다.

직장인으로서 내 일을 생각하고, 연인으로서 아내를 생각하고, 부모로서 아이를 생각하고, 시민으로서 세상을 생각하는 일은 결코 대단하지 않다.

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일상이 되어야 할 일이다. 잠을 포기하고 밥을 혼자 급하게 먹으며 추구할 일은 아닌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의 일상은 이미 꽉 짜여 있어서 이 당연한 일을 하려면 시간을 짜내야 했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있었지만 ‘당연한 일을 할 시간’은 없었다.

회사가 할당하는 업무와 아이와 생활이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한 계절이 흘렀다.

세상은 우리에게 할 일은 많이 주고 시간은 조금 주었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해질 수 있도록 세상의 시간 구조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누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에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들, 그 역할들이 부여하는 당연한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너무나 바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

대단한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는 것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생각만으로 삶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없이는 깊어질 수 없으므로. 가족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세상과 동료 시민에 대해서 나는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 이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기도 하다. 더디더라도 멈춤 없이 노력을 기울여가겠다.

물론 시간은 여전히 없을 거다. 잠을 줄이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도 오래가기는 힘든 방식이다. 마땅한 방법은 없다.

그저 일상에서 생기는 불규칙한 틈들을 하나하나 그러모아서 조금씩 조금씩 생각을 전진시켜 갈 뿐이다. 이 많은 생각거리를 이 부족한 시간들로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매일 조금씩은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채널예스〉 연재는 내게 좋은 기회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생각을 해야 했고,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이 일어났다.

순간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잠을 포기할 가치가 있었다. 이런 태도를 바탕으로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세심하게 쌓아올린 생각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빚어낸 태도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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