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할 때는 그저 ‘이 순간에 내가 나와 세상을 잘 만나고 있나?’만이 의미 있는 질문이지요.
핵심은 예방의학과 양생養生이에요. 그러니까 병에 걸리기 전에 잘 돌보자, 생의 기쁨을 길러가자, 그러면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에요.
무엇보다 예방의학 부분은 ‘마음수양’의 권고로 많이 채워져 있어요.
당시 성리학자들에게는 마음수양이 매우 중시되었기에 아무래도 그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렇지만 동양철학의 바탕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음수양이 주축을 이룹니다.
심지어 의학책에서도 감각 절제(여기에는 감정도 포함됩니다. 심지어 기쁨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와 함께 마음수양이 병을 막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라고 밝히고 있어요
마음이 날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이에요. 좀 더 거르지 않고 이야기하면, 아직은 마음의 때가 많아서입니다! 그 때는 잘 불려서 벗겨낼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쿤달리니 요가에서는 내 안에 잠든 에너지를 깨우고 그걸 끄집어내려는 고행, 노력을 강조하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요기들은 요다와 루크처럼 동굴(히말라야)에서 수행을 많이 했고요.
원래 동양의 수행 문화는 깨달음을 얻고 자기실현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서구로 넘어가면서 개인의 행복과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특화돼 발전해요
생각해보니 〈스타워즈〉는 신화, 대자연, 요가, 수행, 포스처럼 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한데 뭉쳐놓은 영화였어요.
어떤 부류의 사람들 말일까요? 바로 삶과 자연과 그 근원을 노래하고 싶어 하는, 전혀 위험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엉뚱하게도 무예를 익히고 사는 이들이요.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적을 무찌른다거나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비장함을 사랑하는 이들이죠.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안에 있는 뭔가를 끄집어내서 닦아간다는 이야기에 끌리기 마련이에요.
미세먼지 들이마시며 나선 출근길에서도 자연의 삶, 자기 안의 뭔가를 끄집어내는 숭고함을 동경하죠!
마인드컨트롤은 인류의 고뇌에 맞서서 가장 단단하게 압축된 금강석 같은 한마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마음을 컨트롤하며 아름답게 사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는 거예요.
‘모든 답은 내 안에 있고, 모든 문제는 내가 만든다. 그 인과관계를 뒤늦게 차나 한잔 마시면서 돌아본다.’
"마음이 너무 시끄럽습니다." "이보게, 차나 한잔 마시게."
진짜 아는 게 목적이라면 해보기에 열중해야 해요.
자기를 잘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를 잘 관찰하자고 ‘말하는 일’이 실제로 자기를 관찰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죠? 둘은 엄연히 달라요.
정말로 자기 관찰을 하려면, 이론이 아니라 자기를 관찰해야 합니다
숙련자는 힘든 일도 정말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힘을 잘 뺄 줄 알기 때문이에요.
근육의 이완은 마음의 이완으로 이어져서 심적인 안정감을 줘요. 그러면 뭐든 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죠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억지로 힘을 내려고 하거나 ‘힘을 내야 할 텐데······’ 하면서 걱정하는 일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잘하려는 마음을 빼고 가도 괜찮고, 힘주면서 해야 하는 줄 알았던 일은 그냥 해도 되며, 오히려 그럴 때 자기답게 할 수 있다는 걸 이완하며 스스로 깨달아요.
이완을 잘하면 대단한 행복을 경험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내적 만족감이 올라오니까요.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몸-마음을 이완해서 행복을 경험하게 한다는 원리로 설명했어요.
요가는 몸을 통해서 마음까지 이완하는 움직이는 명상법이에요. 몸-마음을 이완하면 저절로 건강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지며, 정신력도 강해집니다.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면서 삶의 본질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상하죠? 이완하면서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지요.
삶의 본질 같은 말은 어디까지나 철학의 영역이잖아요.
왜 몸을 이완했는데 마음도 이완이 되고 나중에는 ‘왜 사느냐’ 같은 철학적인 질문이 이어지느냐, 저는 이것이 몹시 궁금했어요.
‘내가 무얼 위해 열심히 사나?’, ‘추구하는 게 결국 무엇인가?’, ‘지금 추구하는 게 있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같은 질문이 따라오는 거예요.
‘이미 행복이 내 안에 있고 그것을 꺼낼 수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무얼 하면 좋을까?’
그러면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열하고 싶은 욕구가 들어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좀 뒤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좀 더 많이. 아니 삶의 우선순위라고 하면 굉장히 단위가 크니까, 작게는 오늘 하루의 우선순위를 재배열하게 돼요.
명상의 역할은 첫째 몸-마음의 이완, 둘째 깨어 있기예요.
몸-마음을 이완하면 자가 치유 시스템에 불이 켜지는 것과 같아요.
보통 몸이 으슬으슬하다가도 푹 자고 나면 낫잖아요. 잠이 최고의 이완 반응을 끌어내기 때문이에요.
우린 밤마다 천연 치료제를 복용하는 셈이지요.
명상은 열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같지만, 명상에 빠진 사람은 자기 내면의 거친 바다를 마주하는 거예요.
이 바다를 지켜보고 생생하게 느끼는 일이 뇌를 건강하고 창의적으로 세팅해줘요.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 파도에서 튀는 물방울이나 입술로 흘러들어 온 짭짤한 바닷물에 담겨 있는 거고요
실제로 눈을 뜨고도 감은 채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일테면 눈 뜬 장님이 되는 거죠.
무엇을 보든 무엇을 하든 깨어 있어야 하는데, 깨어 있기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우린 그저 몸에 박힌 대로, 익숙한 방향대로 움직이며 사는 습관의 동물이니까요.
명상에서는 알아차림, 깨어 있음, 마음챙김 같은 말들이 엄청나게 중요해요. 사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죠.
눈을 뜨고 보아도, 눈이 아무리 좋아도, 눈에 마음이 가 있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있다면, 방금 문장을 한 번 더 읽어도 좋아요. ‘봐야지’ 하고 주의를 기울일 때 비로소 마음이 눈으로 갑니다.
‘나 자신을 찾는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합니다. 그건 나를 잃어버렸다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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