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기적으로 서점에 가고 책을 사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독서가 유일한 취미이고 책을 읽는 것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에세이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덮어 버린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나 혼자서 괜찮아 한다고 되는 세상은 아니었다.

물론 사람들에게 나처럼 지독하고 치열하게 살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라는 벌을 받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성공하고 싶고 명예와 부를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나보다 더 치열하고 지독하게 살라고 말하고 싶다

내 걱정을 대놓고 살벌하게 해주던 사람이 이제는 식전 기도를 할 때 가장 먼저 날 위해서 기도해 준다.

참, 돈이라는 녀석이 가진 힘은 어마어마하다고 느꼈다.

더 이상 돈 때문에 슬퍼할 일이 없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수고했어, 지금 그대로 사랑스러워.’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포기를 종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일까?

가난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가?

사회 탓, 못난 부모 탓, 지인 탓, 도대체 누구를 탓해야 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가진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성공을 위해서 이가 다 부서질 때까지 이 악물고 성장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길 바란다. 그래야 겨우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내 주변 사람들은 한 번도 내게 ‘대단하다, 넌 특별한 사람이야, 넌 할 수 있어, 너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도전과 노력은 걱정으로 포장된 부정의 대상, 그리고 사람들의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러자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와 나를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은 내가 뭘 하든 간에 ‘그건 (안)대장님이니까 할 수 있는 거죠, 넌 머리가 좋으니까, 똑똑하니까.’로 바뀌었다.

불과 2~3년 만에 나는 무슨 명약을 먹고 머리가 미친 듯이 좋아진 건가,

언제부터 난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었는가! 웃길 때가 많다.

사람들은 모른다. 나에대해 쉽게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것이 얼마나 남의 인생과 노력에 대해 무책임한 행동인지를 말이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하나씩 쌓아 올린 나의 노력과 도전들을 모른다.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극복해야 했던 시련과 어떨 때는 좌절했던 수많은 역경,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성공을 위해서만 달렸던 고통의 시간은 모두 무시한 채로 현재의 나의 성공만을 보고 운이라고 말한다.

또 지금은 그냥 나는 원래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이라서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한 사람이 무엇을 도전하여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노력, 고난과 포기의 고통이 있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은 부를 얻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성질 같아서는 그 친구를 죽여 버리고, 세상 사람 다 죽여 버리고 나도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뭐가 끝나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고 싶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자살’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자살을 생각한다. 그런데 죽지 못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난을 지옥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난보다 더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괴로운 삶이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전보다 훨씬 더 멋진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고 내가 전보다 훨씬 더 멋진 삶을, 아니, 멋진 것을 떠나서 상위 1%의 삶을 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정말 사람 인생은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다.

과거는 현재이고 현재는 미래이다

내가 지옥으로 떨어진 것은 나의 과거에 대한 증명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현재에 충실했던 것의 증명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삶이라는 것이 증명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저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다고 해도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주저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정말로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노력하는 척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노력하는 이유는 성공하고 싶어서인가?

성공한 척 보이고 싶어서인가?

정말 세 시간을 자면서 일을 했다면 무슨 일을 했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s://band.us/band/81791437
슬럼프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진 상태가 비교적 길게 계속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평소 100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80의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한두 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면 슬럼프라는 뜻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한두 번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상태가 쭉 계속되면 인생이 꽤나 고달파진다 - < 눈떠보니 서른, 강혁진 지음 >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재의식에 새긴 내용이 외부 세계에서 실현된다는 잠재의식의 법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건강, 부富, 행복의 이미지가 잠재의식에 새겨지듯 질병, 가난, 슬픔의 이미지도 잠재의식에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절대 그럴 여유가 없어" 같은 혼잣말을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잠재의식에 도달해 현실 세계에서 발현된다.

마찬가지로 질병, 실패,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의식에서 하나의 믿음으로 자리를 잡으면 외부 세계의 객관적인 현실이 된다.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믿거나 원한다고 생각이 바로 믿음이 되는 건 아니다.

잠재의식에 소망을 새기려면 반복해서 확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지를 소망, 기대, 감사 등의 긍정적인 감정의 열기로 태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포,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외부로 배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고 자기 패배적인 믿음이 잠재의식에 투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럼프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부진 상태가 비교적 길게 계속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평소 100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80의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한두 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면 슬럼프라는 뜻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한두 번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상태가 쭉 계속되면 인생이 꽤나 고달파진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데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뭔가를 할 때 남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가 이룬 성취들이 모두 하찮게 느껴진다.

객관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일마저 시시해 보인다.

6E 이력서를 쓰는 것은 결국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일과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