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동안 꿈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키울 수 있는 공간, 특히 책상이 있어야 한다고 수없이 잔소리를 해왔다.
내 말을 흘려듣지 않았던 분들은 이미 예전부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 공간들이 ‘내 책상 자랑하기’라는 이벤트를 통해 처음으로 커뮤니티 전체에 공유된 것이다.
시간과 공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나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면 누구나 저절로 무기력해진다.
대학 때 배운 것도 잊어버리고 새로운 정보도 아이디어도 없으니 당연히 자존감도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회사라는 곳은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하는 곳일 뿐이다.
어떤 회사도 나의 성장과 미래를 대신 고민해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키려면 결국 투자를 해야 하는데 돈도 시간도 공간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감을 갖자’는 것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젖은 낙엽처럼 지금 회사에 찰싹 붙어서 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게 된다.
10년 후 미래를 기획하고 꿈을 꾸지도 못한다.
50대가 되면 지금보다 더 고갈될 것이 눈에 보이니까.
그러니 20대 때처럼 다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좁아도 책상 하나 놓을 공간이 없는 집은 없다.
거실 소파를 옆으로 밀어내든 식탁 옆에 작은 테이블을 두든, 뭐라도 놓고 책에 둘러싸여야 한다.
내 공간에 100권의 책이 있다면 100권만큼 생각이 커지고 1,000권의 책이 있다면 1,000권만큼의 세상이 내 것이 된다.
생각이 크고 세상이 넓어져야 비로소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아무 자극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는 나를 위한 그 어떤 대안도 낼 수 없다.
대안을 내고 싶으면 대안을 낼 만한 것들로 내 공간을 채워야 한다.
공간은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을 규정해준다.
집에 오자마자 소파와 한 몸이 되고 리모컨을 손에 붙이고 있는 사람들은 일상도 소파를 닮아간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푹신한 소파에 묻어버리고 TV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 공간이 소파가 되어버리면 내 정체성도 ‘눕는 사람’이 된다.
많은 이들이 드레스룸은 만들어도 서재는 안 만들고, 신혼집 꾸밀 때 냉장고와 식탁은 신중하게 고르면서 책상은 대충 사는 이유다.
그럴수록 더더욱 나를 통제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서 책상이 필요하다
집 안에 나만의 책상이 없다는 것은 ‘나는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책상 하나만 봐도 그가 얼마나 충실히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는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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