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작은 생명체에 대한 욕망은 매우 자연스러운 욕구임에 분명하다. 우리 부부라고 그런 욕망이 없었을까. 

사랑하는 우리 둘을 닮은 아이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귀여운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여전히 우리부부의 삶은 우리 둘뿐인 것이 더 행복해 보였다. 

아이가 있다고 불행하진 않겠지만,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이미 충만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낳는 사람, 낳지 않는 사람 둘 중에 누군가가 비정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치관에 대해 네 편 내 편 나누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다양한 선택만큼 선택으로 가는 과정도 다양한 법이다. 나의 갈팡질팡은 여러 가지 형태의 선택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있어야 집안 분위기도 밝아지는 거다."
"저희 집은 지금도 밝은걸요. 아이가 있으면 오히려 싸워서 어두워질 것 같아요."

"너희가 아직 신혼이라 그렇지, 아이 없으면 쉽게 이혼해."
"아이 때문에 맞지도 않는 사람과 이혼 못 하고 사는 게 더 슬프지 않나요."

나라고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효도를 하기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온전히 부부 둘의 문제이다. 누구도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 물론 가족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가족들의의견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강한 책임의식을 가졌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은 최대한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행복하다. 

행복의 크기를 정확히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 [아이]라는 책임은 가져다줄 행복의 불확실성에 비해 리스크가 큰 일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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