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공간을 주무르는 것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새롭게 창출해낸 셈이다. ‘공간 계획’이 가진 막강한 힘이다.
설령 바로 잡아야 할 게 생기더라도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결정에는 언제나 책임이 뒤따르기에 누군가 나서서 변화를 주도하기도 쉽지 않다. 행여 상반된 이해를 가진 사람이라도 있으면 문제는 더욱 미궁에 빠져든다.
그래서 맨 처음에 그려진 그림으로 끝까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무명의 설계자가 그린 도면이 대규모 개발 사업의 밑그림이 되고, 그중의 상당수가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다.
놀라운 건 그들의 중차대한 역할만이 아니다. 건축 설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들의 높은 위상과 역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건물은 단지 감상이나 전시를 위해 만드는 예술품 혹은 장식물 따위가 아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지는 하나의 실용품이다. 그런 만큼 심미주의적인 접근도 중요하겠지만 심리주의적 사고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 나은 건축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뇌가 다양한 건축적인 요소에 ‘왜’ 그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양이나 색깔, 질감 등에 따라 인간의 뇌가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말이다. 지금껏 건축이나 공간을 다룬 책들의 상당수가 심리학자나 뇌과학자에 의해 주도되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도시를 수놓은 건물들 역시 그들에게 부여된 위상이나 역할에 걸맞게 계획되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공간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검토를 거친 다음 만들어진 결과물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행여 이미 지어진 건물들을 근거로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을 평균화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반복해오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은 했지만 정작 만들어낸 것은 그저 과거를 베낀 한 장의 ‘그림’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경험에 따르면 모든 설계 기준은 이미 지어진 건물들에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기존의 것들이 정답 혹은 모범답안이라는 근거도 없이 단지 먼저 지어졌다는 이유로 새롭게 지어지는 쇼핑센터의 표준 모델이 된다.
천장 높이와 동선의 넓이는 물론 매장의 크기와 형태, 에스컬레이터의 개수와 위치, 방향까지도 이미 지어진 쇼핑센터가 거울이 된다.
최소 100년 이상 지탱해야 할 첨단 사회의 건물이 이미 고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어느 20세기 건축가의 설계 지표에 의해 계획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하다. 형태와 디자인만 엄청난 발전을 이뤘을 뿐 기능적으로는 30년 전에 지어진 쇼핑센터나 최근에 지어진 것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
마치 사람들의 체형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지하철 좌석이나 학교 책걸상의 크기와 높이 등은 여전히 30년 전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말이다.
쇼핑센터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그림을 맡겼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한 소중한 영업 경험은 깡그리 무시된 채 아무 경험도 없는 누군가에 의해 30년째 같은 그림만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중이다
종업원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매장은 매출액이 무려 29.2%나 상승했다. 반면에 종업원의 만족도가 낮았던 매장은 매출액이 평균 18% 정도 줄어들었다.
손님을 왕처럼 떠받들라고 강요하기에 앞서 직원들이 먼저 존중받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연구 결과다. 직원 스스로 회사를 사랑할 때 그 애정이 고객에게도 전달되어 매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점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을 안으로 들일 수 있도록 즐겁고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게 공간 마케팅의 핵심이자 최우선 과제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신입은 사다리를 밟아보지도 못한 채 실컷 두들겨 맞기만 할 뿐이다. 그런 그가 깨닫는 건 사다리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신입이 들어오면 일단 두들겨 패는 게 이곳의 집단문화라고 오해해버린다.
사다리에 오르면 물벼락이 쏟아진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묻혀버린 채 말이다. 또다시 원숭이가 교체되고 같은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오해’는 점차 ‘전통’으로 굳어진다. 신입에 대한 폭력이 하나의 전통으로 인식되면서 점차 합리성을 얻어가는 것이다
앞서 원숭이들의 행동처럼 이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내려오는 방식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원래의 목적이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어 전해지는 것일 수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건 실제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이따금 무언가를 학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햄을 오븐에 넣어 굽기 전에 항상 끝부분을 2인치씩 잘라내던 어느 젊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다. 매번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알고 보니 엄마가 하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서 배운 행동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녀의 엄마 역시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다. 엄마도 그저 할머니를 보고 따라서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유를 아는 사람은 오직 할머니뿐이었다. 내심 거창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기대했지만 돌아온 답은 허망했다. 뜻밖에도 햄을 담는 오븐 그릇이 작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이유였다면 딸도 엄마도 굳이 햄의 끝부분을 잘라낼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이미 충분한 크기의 오븐 그릇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따라만 하고 있었으니 아까운 햄만 낭비해온 꼴이다.
소매업계에서 알음알음 전해져 계승되고 있는 공간 기획가들의 경험이나 노하우 역시 마찬가지다. 온통 불편함으로 점철된 쇼핑센터의 공간이 지금껏 엄마와 딸에 의해 낭비된 햄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상식과 틀을 깨는 매장을 구경하면서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기에만 바빴을 뿐 어떻게 그런 매장 구성이 가능한지 그 이유와 사업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이다.
내면과 본질을 꿰뚫었어야 할 통찰력은 내팽개친 채 모두 껍데기만 더듬고 있었다. 정작 맛봐야 할 알맹이를 놓쳐버리는 건 당연한 결과다
신세계는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내는 일을 디벨로퍼가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리테일러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테일러는 제조업자로부터 상품을 매입해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소매업자’다. 영업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스스로 떠안는다. 하지만 디벨로퍼는 그런 소매업자에게 매장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임대업자Non Occupied Owner’로서 쇼핑몰을 운영할 뿐이다.
별것 아닌 듯해도 기회는 항상 위험과 짝을 이루어 찾아온다는 점에서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디벨로퍼가 만든 쇼핑몰에 특별함이 깃들지 않는 건 위험을 싫어하는 그들의 본성 탓이다. 단지 공간만 빌려주고 책임은 떠안기 싫은 그들로서는 오직 점포를 채우는 데만 열중할 수밖에 없다
같은 면적이라도 백화점이 쇼핑몰보다 월등히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임대업’ 중심인 쇼핑몰과 달리 백화점은 대부분 ‘소매업’에 종사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숍에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안락한 의자와 편안한 분위기, 실내를 휘감는 감미로운 음악,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 등이 우리가 커피숍을 찾는 진짜 이유에 가깝다.
커피라는 유형의 상품은 물론이거니와 커피숍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담아내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소비하는 대상물인 셈이다.
비단 커피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세상은 상품을 넘어 공간과 거기에 속한 모든 것들을 소비하기에 이르렀다.
소비자가 육체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만큼 1인당 구매 금액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연이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공간을 이해한다는 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가격이 저렴해지는 상황에서는 그만큼 소비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항공권의 가격이 변화할 때 소비자의 반응은 민감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가격에 대한 민감도는 더욱 커진다
가격 탄력성이 낮다는 건 가격이 올라도 소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음을 뜻하고, 이는 제품 가격의 상승이 곧 공급자의 수익으로 고스란히 이어짐을 의미한다. 그런 시장에서는 가격을 낮춰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최대한 높게 유지하는 게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이다. 신경을 쓸 부분이 있다면 소비자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는 인간의 핵심 활동이 ‘생산’에 머무르지만 그게 해결되는 순간 ‘소비’로 옮겨간다.
한 인간을 규정하는 데 필요한 물음이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에서 ‘무엇을 소비하는가?’로 바뀌면서 이전에는 없던 소비가 급격히 늘어난다.
‘하는 일’이 아니라 ‘소비하는 제품’으로 자신의 능력을 대변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비의 질 또한 그만큼 향상된다.
스스로 욕망을 일깨우고 자극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기반한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성까지 고개를 쳐들면서 남들이 원하는 것을 마치 내가 원하던 것이었던 것마냥 착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종국에는 과시적인 소비를 경쟁적으로 일삼게 된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벌어진 과시적인 소비와 경쟁은 어제의 사치품을 오늘의 필수품으로 바꿔놓는 데 크게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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