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 같이 힘든, 아니 차라리 죽고 싶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덧,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힘들었는지 아득하게 남의 일 같이 느껴질 때도 또 거짓말 같이 찾아옵니다.

아마도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웬만하면 다들 어찌어찌 견디는 모양입니다.

무언가에 대한 열정으로 혹은 누군가에 대한 애정으로, 뜨겁고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듯 미적지근하고 산만하게 지나온 궤적이 부끄럽습니다.

문득 지난날들을 돌아보자면, 행복하고도 불행했던 그 많은 순간들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싶습니다.

흘렸던 눈물도, 누군가에게 뱉은 독한 말들도, 자책과 원망으로 잠 못 이루던 밤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듯합니다

겨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덜 분노하고 좀 덜 집착하고 좀 덜 애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또 반대로 분노해야 할 때 제대로 분노하고 끈기 있게 더 버티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걸… 하는 후회 역시 듭니다.

역시 어리석은 자신에게 또 속은 것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과 모순 많은 사회를 짐짓 심각하게 걱정도 해보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나를 속인 것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속인 죄가 수십 배 수백 배 더 큰 듯합니다

혹 자신의 인생이 얼마 안 있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無’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는 동안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무지 애를 썼고, 이름을 떠올리면 추억으로 미소라도 짓게 만드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찰나, 생겼다 없어지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한 ‘거짓말’ 같은 인생.

그럼에도 내 영혼은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사라진 후에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에…. 감히 이 찰나의 거짓말에 ‘멋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늙거나 죽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분명 살아 있지만 "그 사람, 왜 빨리 죽지 않지?" 하는 소리나 듣는, 쓸모없거나 남들에게 폐만 끼치는 할 일 없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마침내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어둔한 내 일손이 아니라 나의 돈, 그냥 걸리적거리지 않고 후원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 후부터는 나서서 젊은 사람들 틈에 끼여 무언가를 할 때 신중해진다.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내 존재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아무리 꼰대 짓, 노인 짓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냥 앉아만 있어도 꼰대로 비칠 수 있다는 것

아주 늙지도 않고 아주 젊지도 않은, 노인도 아니고 중년도 아닌 어중간한 이들이 그렇게 떼로 몰려다니며 카페고 식당이고 여행지를 시끄럽게 만드는 모양이다.

나이로 대우받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나이 든 사람들 섬기기도 뭐하고. 결국 다른 세대 사람들 눈살이나 찌푸리게 만드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겠다

아이와 헤어지고 나면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자꾸 보고 싶다. 아이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나를 보며 쓱 웃어주는 미소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내가 뭐라 하면 답을 해주는 그 소리도 들린다. 하루하루 새로운 음절을 내며 스스로 배우고, 어떤 때는 그 소리가 낯선지 눈이 동그래지는 손주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정신 차리자. 이나미. 아들, 며느리, 손주는 언젠가 내 앞에서 모두 사라져 제 갈 길 가는 별개의 존재다. 홀로 서는 법.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갈고 닦아라

호주 작가 브로니 웨어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라는 책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나는 어쩐지 이게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고 은근히 강요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