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건 깊이가 생기려면 시간과 열정과 노력과 눈물이 필요해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갈수록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죠.

더 좋아져야 하고 더 잘해야 하는 것들만 자꾸 늘어났어요

마음이 이렇게 마냥 울퉁불퉁하면, 내가 하는 지금 이 행위에서 눈을 떼고 짜증을 내면서 도망갈 궁리를 하게 마련이에요.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닌, 부산하기만 한 상태가 되죠. 별것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마음이 피로하고요.

이런 상태가 되면 다른 사람을 보고 평가하는 데 빠져들어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남을 보는 게 언제나 더 쉽고 달콤하고 재미나잖아요. 유튜브 보기도 그중 하나죠

이런 상태가 되면 다른 사람을 보고 평가하는 데 빠져들어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남을 보는 게 언제나 더 쉽고 달콤하고 재미나잖아요. 유튜브 보기도 그중 하나죠

그 과제는 하루에 한 가지면 충분하더군요. 그 이상은 머리가 기억하지 못해요.

하루에 한 가지 명상을 틈틈이 반복하면서 고요함을, 민감함을, 열린 마음을 길러가려고 합니다.

전철 이동 중에 한두 꼭지만 읽고 맛을 느낍니다. 조금씩 하는 독서, 몸으로 들어와 나와 하나가 되는 독서가 참 좋아요.

명상은 자기 마음을 잘 돌보는 일이에요.

상황, 사람,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언제나 환한 마음으로 지내기로 마음먹고 실천하는 일이지요.

그것은 작은 텃밭을 돌보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작은 텃밭도 가만히 놔두면 쑥대밭에 제멋대로가 되잖아요.

원래도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 데다가 골몰해야 하는 과제가 하나 생기면 일상이 쑥대밭이 되고 말아요.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일상과 내면은 연결되어 있어요.

내면과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갈피를 잡기 어렵잖아요. 더욱 깊고 세밀하게 다루어야 하죠.

일단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만지고 맛볼 수 있는 것부터 다듬어가면 한결 쉬워요.

그래서 요가는 몸을 돌보면서 마음을 돌봅니다. 같은 원리로 일상의 작은 행위들을 돌보면 내면을 돌볼 수 있어요. 이것은 중요한 명상 수행 중 하나랍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은 일상이 곧 수행이라는 뜻입니다.

옛 선사들은 걷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말하지 않고,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그 모든 순간에 깨어 있으라고 했어요.

명상이 산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거나 조용한 시공간에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예요. 오히려 삶의 지극히 작은 행위들을 명상으로 바꿔가라는 격려로 들립니다

멀리서도 누가 내 이야기를 하면 귀에 바로 꽂히듯이, 나는 나에게 엄청나게 관심이 많아요.

내 머릿속에서 내가 만드는 나의 이야기인데도, 마치 남이 하는 내 이야기인 것처럼 신선하게 놀라면서 귀를 기울이죠.

그 중계방송을 백색소음인 듯 여기고 지금 하는 일을 해나갈 때, 놀라운 알아차림이 일어나요.

지금 하는 일이 양치질이라면 칫솔에 치약을 묻힌 뒤 치약 뚜껑을 잘 닫고, 지금 하는 일이 옷 입기라면 소매 밖으로 팔이 빠져나올 때의 감각을 잘 느껴보세요

고작 그런 것이라고 생각되시나요? 하지만 그처럼 지금에 마음을 기울일 때, 마음이 고요를 찾아가고 진리의 한 자락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만든 영화들의 주제는 비슷해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삶의 무게, 늙음······. 어찌 보면 모두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죠

"행복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야.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지

우린 다 자기대로의 삶을 살잖아요.

무척 잘 살지는 못해도 잘 살려고 애쓰며 살아가죠. 그건 우리가 삶에 숙련자가 아니기 때문이고요.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어떤 직업인으로서 경험이 풍부하다고 해도 그 누구도 삶의 숙련자는 아니잖아요. 그저 다 비기너죠.

지금 이 나이는 처음이고,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며 이런 사람들과 이런 생각 속에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데 저를 관찰해보니 제 머릿속에서만큼은 제가 초심자가 아니더라고요.
‘나는 말이야’, ‘내 생각에는’, ‘나로서는’······.
머릿속에 온통 잘난 ‘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좀 잘해야 하는, 뭘 좀 보여줘야 하는, 누가 잘난 척하면 참을 수 없는, 그러나 용기(?)가 모자라서 속으로 감정을 삭이며 우울해하고 권태에 빠지고 회의감이 몰려오는 그런 나였어요.

‘살면 얼마나 살아봤다고, 알면 또 얼마나 안다고, 해봤으면 또 얼마나 해봤다고!’

쇼펜하우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인생이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투쟁과 그것이 만족되었을 때 엄습해오는 권태 사이에서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마음이 잠깐 길을 잃으면 익숙한 그 비교의식 속으로 빠져든다는 말이에요.

‘나는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비교의식에서 나온 거죠.
그런데도 저는 그게 자존감인 줄로 알았어요.

자존감의 본질이 ‘자기 정신에 대한 신뢰와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라고 했어요.

내 정신건강을 신뢰하고 나는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죠. 서구의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요.

그런데 화를 안 내는 게 목표가 아니고, 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좀 이해해보고 싶다고 하면 달라져요.

화는 남이 가져다주는 것 같지만 실은 내 안에서 일어나거든요.

내가 어떤 부분에서 화를 내는지, 어떨 때 화가 더 커지는지, 왜 나는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 되었는지, 즉 자기 관찰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화에서 한발 물러나면서, 신기하게도 통제한 것도 아닌데 화가 점점 줄어요.

나를 알아가려는 자세를 가졌을 뿐인데 말이죠.

화에 휩쓸리거나 화를 싫어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일은 낯설어요. 화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화를 보는 연습을 하면, 화와 나 사이에 공간이 생겨요. 그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인간 중심 치료의 창시자 칼 로저스도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그때 나는 변화할 수 있다."

지금의 나를 잘 받아들이는 일은 좋은 변화로 이끌어요.

잘 받아들이기가 나아감으로 연결되는 거예요.

신기한 일이죠. 문장으로 써놓고 보면 논리가 영 맞지 않잖아요.
‘지금을 받아들이는데 그게 왜 나아감이야? 둘은 반대 아닌가?’
언어적 모순을 느껴요. 그러나 이런 마음의 원리는 내 마음을 잘 관찰하면서 알아갈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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