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지는 않았지만 늘 즐겁지 않았던 것만은 아니고 가끔씩은 즐거운 시간도 있었다.
가족을 내가 택할 수 없는 것과 매우 비슷하게도, 같은 회사 동료 역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공동체 식구들이다.
심지어 실제 가족들과 보내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니,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매달 남에게서 그렇다는 확인을 받고 싶지는 않다.
만만치 않던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암보험을 깼다. 모든 것은 주님이 알아서 채워주신다며 암보험을 깬 다음,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웃을 수도 없고 그저 기만 막혔다
그렇지만 기막혀 할 틈도 몇 분 주어지지 않았다. 환자의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을 알려주는 기계가 냉정하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주자 네 자매의 막내인 어머니는 이모들과 끌어안은 채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눈물도 흘릴 틈 없이 장례지도사의 강권에 지하에 있는 사무실로 끌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금 나는 부친을 잃었는데 그 부친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노련한 장례지도사와 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이백 만 원도 아니고 새파란 청춘을 저당 잡혀 만든 돈이었으니 내가 좀 더 생색내도 좋았겠건만, 부모님의 이야기는 지금 한 마디로 네 돈이 꼭 필요하긴 한데 그걸 네가 내놨다고 우리에게 생색낼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였다.
뭔가 불공평했다. 무기한 무담보 무이자 대출로 다른 사람이 피땀 흘려 번 돈을 가져가면서 싫은 소리도 안 듣겠다니, 공정하지 않았다.
흐하하. 너무 황당할 때는 울음보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어차피 내 전세금 그 돈, 내 주머니로 도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어. 하늘 창고에 있다니 나한테 도로 올 리가 있겠어. 부모님 주머니로 한 번 들어간 돈이 나한테 도로 들어오는 꼴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뭘 기대했냐, 흐하하. 거하게 한 번 헌금했다 치자,
이제 나는 홀어머니를 모시는 입장이었고, 나이도 서른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이제 어른 노릇을 해야 할 때가 온 거였다.
마음 같아서는 쓰고 싶은 글만 쓰면서 살아가는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황망한 모습이 되어 있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면 남들처럼 좋은 직장 갖고, 괜찮은 남편 잡고, 어디 나가서 꿀리지 않는 딸이 되는 것이 효도인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바늘처럼 뾰족하게 마음을 찔러왔다.
회사원 적성은 아니지만 적성 맞아 회사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버지를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사랑했다. 나의 뻣뻣한 성격과 눈치 없는 면은 아쉽게도 아버지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심각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너도 이제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무슨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심각한 이야기를 견뎌낼 만큼 충분히 자라지 않았는데.
세상의 진실이라니, 나는 그런 것과 마주할 만큼 다 크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아버지가 오늘 유치원에서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빨간 옷을 입고 흰 수염을 단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한테 선물을 주고 간다는데" 하고 내가 신이 나서 설명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기더니 곧 눈을 뜨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나에게 말했다.
"현진아, 산타클로스 같은 건 없다. 우리가 믿어야 할 건 오직 주 예수님 한 분뿐이란다
그렇게 신나게 산타 할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을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자랑하던 너희라도 몇 년간은 부디 행복했기를
결국 아버지의 문제는, 단 한 번도 노동자로 생활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노동의 맛을 모르면 겁쟁이가 되고, 겁이 많으면 자연스레 나약해지기 마련이니까.
바보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어느새 닮아 있는 내 모습도, 씁쓸하면서 부드럽게 내 가슴 속을 맴도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모두 다 서서히 사그라지기를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기억들에 간신히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런 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대표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가 욕하고 뭘 집어 던질 때 나는 어릴 때 맞고 자란 애 출신답게 머리가 통째로 얼어버렸다
"당신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나도 이제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족에게 가장 많이 위로를 얻는 것은 냉엄한 세상 속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여주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언니와 형부는 정말로 내겐 가족이다. 게다가 언니도 되고 형부도 되고, 오빠도 되고 새언니도 되고, 엄마도 되고 아빠도 되고, 온갖 가족의 역을 다 해준다면 너무 과장일까.
아시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시겠지만, 나는 웬만한 포크레인 못지않게 삽질을 많이 한다. 물론 생각이 짧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언제나 조금 못나고 뒤떨어지고 손해 보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내가 그들을 사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방’이 아닌 ‘집’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기를. 그 예쁜 집에 살면서 예뻐졌기를. 그리고, 지친 청춘 모두에게도 다들 머리 누일 곳이 있기를
오랜 기간 책을 내고 또 내면서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락福樂은 좋은 독자를 갖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간 나는 늘 이 행운을 누려왔고, 이번에는 각별히 나를 살려주신 독자 여러분 덕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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